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산 수입품 전반에 대해 30%의 고율 관세를 예고하면서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의 예외 조항이 유지될지가 피해 규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예외 조항이 유지되면 관세 부담은 최소화될 수 있지만, 제외될 경우 미국 내 가격 경쟁력 약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아·삼성·LG 등 현지 생산기업 '비상'…USMCA 예외 적용 땐 피해 최소화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멕시코 정부에 30% 관세 부과를 예고하는 공식 서한을 전달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3월3일부터 멕시코 수입품 일부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었다. 이 관세가 30%로 확대되면 멕시코발 대미(對美) 수출 제품에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USMCA 예외 조항 적용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USMCA는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제품은 예외로 간주해 관세를 면제한다. 이 조항은 지난 3월 관세 부과 이후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USMCA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 제조업체들의 강한 반발로 결국 예외 조항을 유지했다.
이번에도 같은 맥락에서 USMCA 품목은 고율 관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USMCA 규정 품목에 대해 관세 예외를 적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도 "USMCA는 (관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USMCA 예외가 유지될 경우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기아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연간 40만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미국 시장에 약 12만 대를 수출했다.
삼성전자는 티후아나에서 TV를, 케레타로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레이노사 공장에서 TV, 몬테레이에서 냉장고 등 백색가전, 라모스 아리즈페에서 차량용 전장 부품을 만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멕시코발 대미 수출품의 80% 이상이 USMCA 예외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기업의 경우에도 USMCA 예외 조항 혜택을 누리기 위해 멕시코에 투자를 이어온 만큼 다수가 USMCA 예외 조항에 적용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조성대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멕시코에 투자하는 첫 번째 목적은 수출기지도 있지만, USMCA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기업 다수도 USMCA 기준을 충족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 관세가 30%로 조정되더라도 당장은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외 조항이 유지되더라도 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서는 관세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미국산 부품은 USMCA 적용 시 원산지 기준에서 제외되므로, 미국산 부품 비중이 낮은 차량은 예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적지 않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USMCA 예외'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아, 관세 적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USMCA 조기 재협상 변수 "공급망 재편·북미 수출경쟁력 저해 우려"
USMCA 이행 사항 재검토 논의가 올해 본격화할 것이란 점도 업계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020년 체결된 USMCA의 기본 존속기간은 16년이며, 발효 6년 차에 3국이 공동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재검토는 2026년부터 시작돼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검토를 지시하면서 올해 안에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관세를 적극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를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USMCA 품목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공장의 유휴 부지 등을 활용해 다른 제품 생산라인을 추가로 건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 현지생산 비용이 워낙 비싸고,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 확대는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최근 미국 내 USMCA 검토 논의와 주요 쟁점' 보고서에서 △자동차 원산지 기준 △노동기준 이행 실효성 및 신속 대응 메커니즘 등을 핵심 검토 쟁점으로 꼽으면서, USMCA가 개정될 경우 "공급망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북미 지역 내 판매 및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