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그들도 성인이 된 지금은 어딘가에서 버젓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때도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그래야 했을까’다. 별것 아닌 일로 시비를 걸고, 때리고, 물건이나 돈을 빼앗고… 극심한 사춘기엔 별 것 아닌 일도 별 것이 되었기 때문일까. 그냥 멋있어 보여서였을까.

(이미지=카카오엔터테인먼트)
헤어스타일을 한 번 바꾼 것만으로 일진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만화 ‘오늘부터 우리는’에서부터 한국 만화 ‘짱’까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학원물은 최근 여러 웹툰으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원(ONE)’이다.
원은 이은재 작가의 전작 학원물이었던 ‘텐(TEN)’을 본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 전개를 처음부터 이어간다. 작품 텐에서 주인공이 학교폭력에 마냥 당하고 있었다면, 원에서는 모범생이자 일진들을 혐오하는 주인공이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멋지게 반격에 성공해 약자를 응원하는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주인공은 뜻밖에 발견한 싸움 재능(?)을 살려 곳곳에 흩어진 강자들을 무너뜨리게 된다.
연이어 학원물을 연재했던 이은재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예전부터 ‘폭력’이라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나서야만 상황이 바뀌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원을 끝까지 본 독자라면 폭력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이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최근 웨이브에서 ‘원’을 소재로 드라마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가 제작되었는데 소감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재미있었고요. 원작이 있긴 하지만 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한 만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시청자의 마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 캐릭터들을 꽤 혹독하게 다뤘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습니다. 웹툰을 그릴 때는 그렇게까지 자각하지 못했고, 솔직히 큰 감정이입 없이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막상 드라마로 구현된 의겸이를 보니 마치 내가 못된 짓을 한 것 같은 묘한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감정도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 배우분들, 스태프분들에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학원물 만의 매력은.
△가장 큰 매력은 장르 자체가 지닌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작가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끝까지 동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학교를 다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보다 쉽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다는 점도 학원물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학원물의 중심에는 ‘성장’이 있습니다. 단순히 공부나 싸움, 경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인물들이 상처를 겪고, 갈등을 마주하고, 결국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거나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학원물만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장르 중에서 학원물을 택했던 이유는.
△학원물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주제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무대가 학교로 정해졌고, 텐의 경우에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나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과정의 배경으로 가상의 학교인 ‘무명고’라는 설정이 떠올랐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반대로 원은 텐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시작했습니다. 텐이 폭력을 끝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면 원은 폭력을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대 역시 무명고가 아닌 보다 현실적인 일반 학교로 설정했고 캐릭터의 성향에 따라 이야기의 분위기나 접근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습니다.
이처럼 폭력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진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독자님들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재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이건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고,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리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이나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입니다.
학교폭력은 분명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상처를 입는 일인데 그 피해자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나서야만 상황이 바뀌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와 어른들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예방과 대응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웹툰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본인을 어떤 작가로 정의하고 싶은가.
△아직 스스로를 명확하게 정의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어떤 작가인가’에 대한 정의는 저보다 제 만화를 봐주시는 독자분들께서 내려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사항을 말씀 드리자면 분명한 색과 고유한 영역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만화과에 진학했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다수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하는데 웹툰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르바이트 경험 뿐아니라 살면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나 각종 책과 만화, 영화 등이 무의식 중에 이야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방송국에서 일했던 경험은 조금 특별했던 것 같은데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15년 전) 기억은 흐려졌고, 그저 어떤 연예인을 보았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 있네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경험들까지도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한 조각씩 보탬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결국 이야기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쌓여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카카오엔터테인먼트)
△고등학교 때 축구를 정말 좋아해서 당시 사용하던 아이디가 ‘축구닭’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난 후나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자주 했고 그게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죠. ‘닭’이라는 단어를 왜 붙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냥 말했을 때의 운율이나 재미있는 어감이어서 사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질문과는 상관없지만 닭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치킨을 좋아합니다. 특히 요즘엔 옛날 통닭에 빠졌습니다.
-음악도 즐기는 것 같은데 추천할 만한 음악은.
△음악은 늘 즐겨 듣는 편이라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취미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힙합을 주로 들었고 이후로는 밴드 음악에 빠져들어 콘서트도 자주 다니곤 했습니다. 요즘엔 바쁜 일정 탓에 공연은 커녕 음악을 들을 시간조차 많지 않지만 그래도 잠깐 짬이 날 때 좋아하던 곡들을 다시 꺼내 듣곤 합니다.
추천 곡을 하나 꼽자면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원: 하이스쿨 히어로즈에 삽입되었던 실리카겔의 ‘노 페인(No Pain)’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잔잔하면서도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곡이라 저도 작업하면서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 베트남전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말을 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를 기반으로 한 어떤 서사를 구상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아직은 그것이 어떤 장르일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할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해서 막연한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 먼저 실력부터 더 쌓아야겠지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