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 관련 추가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창용 총재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비은행에 발행을 허용하는 문제 등에 있어서는 점진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각 기관의 업무보고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 총재의 추가 보고와 의원들의 관련 질의가 이어졌다.
우선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관련, 전 세계적으로 화폐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고 화폐에 프로그래밍 기능을 넣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부분을 짚었다. 그는 “이미 은행과 한은 간 화폐의 이동은 디지털화돼 있지만, 여기에 추가적으로 계약 기능(스마트 컨트랙트)을 집어넣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수출 업체가 배에 선적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간다고 했을 때 태평양을 지나는 순간 대금의 절반을 입금하도록 하는 식의 계약을 화폐에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 부동산 거래를 포함한 모든 거래에서 이런 계약 조건을 넣어 돈을 이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동안 이 총재와 한은 관계자들이 밝혀온 대로 은행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도입해 사용성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은행 중심으로 갈 경우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을 제시했다. 은행이 51% 이상의 지분을 가진 컨소시엄에 비은행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비은행보다 은행이 발행할 때 안정성은 분명한 반면 비은행이 발행하면 혁신이 있을지는 아직 검증이 안됐기 때문에 천천히 확장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 규제회피·악용 우려 등 은행 중심 도입 필요성 강조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돈세탁’에 악용되거나 자본 유출 우회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고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으며 △시중 유동성 조절을 어렵게 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가야 하는 근거로 “자본금이 굉장히 낮은 기업에까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면 돈세탁을 도와주는 일이 생길 수 있어 큰 기업들 중심으로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은행에 허용할 경우엔 지급결제은행 즉, 내로우 뱅킹을 허용하게 되는 것으로 은행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 상 증권사와 보험사 등의 비은행 기관이 지급결제업무까지 하게 될 경우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비은행 금융기관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통화량 증가는 조절할 수 있지만 통화량 축소가 필요한 경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로 잡고 있는 국채를 갑자기 대량 매도하게 되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내국인이 헤외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살 경우 원화 예금을 해외에 갖고 있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본 규제를 우회해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돈 많은 분들이 재산의 일부를 해외에 두고 싶다고 하면 지금까지는 연 10만달러 한도에서 여러 안전장치를 두고 나가도록 했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서 그것(원화 자산)을 해외에 직접 유치할 수 있게 해 주면 사실 규제가 굉장히 어렵다. 자본 자유화 규제를 완전히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고 주가를 올리고 혁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본자유화나 금산분리도 허용해야겠지만, 이런 규제들이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조화롭게 해야 한다”며 “은행 중심으로 먼저 가 본 다음에 천천히 가면서 안전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