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교량붕괴, 안전장치 제거가 원인"…국토부, 현엔 처분수위 검토

경제

이데일리,

2025년 8월 19일, 오후 06:54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10명의 사상자를 낸 2월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 공사 사고는 교각 위 가로 상판 ‘거더’의 임시 고정 장치를 임의로 제거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공사는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이하 현엔)이 시공을 맡았는데 공사 현장을 상시 검측할 책임이 있는 현엔은 CCTV를 통해 임시 고정 장치가 제거되는 것을 볼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고를 포함, 올해 3건의 사고에서 6명의 사망자를 낸 현엔에 대해 직권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소재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9공구 천용천교 건설 현장에서 교량연결작업 중 교각에 올려놓았던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연합뉴스)


◇ 거더 임시 고정장치 임의 제거로 ‘와르르’

국토부는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공사 중 청용천교 붕괴 사고와 관련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사고 조사 결과를 19일 발표했다. 청용천교 붕괴 사고는 지난 2월 25일 오전 9시 50분경 세종 방향의 하행선 거더를 설치하기 위해 런처(거더를 운반하는 장치)를 후방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거더가 옆으로 쓰러지며 서로 연결됐던 거더 24본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사현장은 작년 11월부터 포천에서 세종 방향으로 런처를 앞으로 이동시키며, 교대(교량의 끝 부분) A2지점에서 교각 P4, P3, P2, P1 그리고 교대 A1지점을 연결하는 5개 거더(1개 거더당 6개씩의 본이 설치)를 순서대로 설치했다. 도로공사 표준 지침에 따르면 거더 설치 후 거더가 옆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전도방지용’ 스크류잭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2월께 상행선(포천행) 거더가 모두 설치되기 전에 스크류잭 68개가 임의로 제거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전도 방지 와이어도 임의 제거됐다. 그 뒤 런처는 하행선(세종행) 가설을 위해 처음 거더 공사가 시작됐던 곳으로 후방(뒤쪽) 이동하게 된다. 2월 20일께부터 런처 후방 이동이 시작되는데 사고가 발생한 날, 후방 보조 지지대 우측편이 들뜨는 일이 발생한다. 작업자들은 지지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후방지지대의 좌우 실린더 높이를 조정하는데 런처의 메인거버가 비틀리면서 좌측으로 하중이 증가, 거더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연결된 교량 거더 24본, 박스형 런처 등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공사 사고 발생 위치, 스크류잭 제거 및 손상 현황
오홍섭 경상국립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조위가 사고 직후인 2월 28일부터 6개월간 조사한 결과 거더가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한 ‘스크류잭’만 제거되지 않았어도 거더가 붕괴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고 현장에 사용됐던 런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전방 이동 작업에 대해서만 안전 인증을 받았으나 후방 이동에도 사용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사고 현장은 포천방향으론 런처를 설치한 만한 공간이 나오지만 세종 방향에선 그러한 공간이 부족해 후방 이동은 불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후방 이동 상황에서라도 ‘스크류잭’만 제거되지 않았으면 거더가 붕괴되는 일은 없었다는 게 사조위의 판단이다. 사조위는 거더 런칭 기술을 보유한 장헌산업 현장 소장이 작업 편의성을 위해 스크류잭을 임의 제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오 사조위원장은 “스크류잭 해체가 법 위반인지는 법원에서 다뤄질 것이지만 도로공사 매뉴얼에는 어긋나는 행위”라며 “스크류잭을 이용하고 후방 이동했을 때 각 단계별 안전관리 계획이 철저하게 수립됐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건설현장을 상시 검측 책임이 있는 현엔은 CCTV를 통해 스크류잭이 해체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 위원장은 “스크류잭 제거를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CCTV가 있었기 때문에 현엔은 CCTV를 통해 스크류잭이 제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관리가 부실했다”고 설명했다.

런처의 안전 검증도 도마에 올랐다. 장헌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런처의 전방 이동 작업에 대해서만 안전 인증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후방 이동 작업도 하겠다고 안전관리계획서를 작성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도로공사와 현엔은 해당 안전관리계획을 수립·승인했다. 사고 현장의 경우 건설기술 진흥법상 가설 구조물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의 경우 건설사업자나 주택건설등록업자에게 고용되지 않은 기술사가 안전관리계획을 확인해야 하나 이마저도 이행되지 않았다.

시공계획에 제시된 런처 운전자와 사고 당일 작업일지의 운전자도 달랐다. 작업일지상의 운전자는 작업 중 다른 크레인 조종을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

이밖에 국토부 특별점검단이 4월 사고 현장을 특별점검한 결과 안전관리 미흡 사례 4건, 콘크리트 압출강도 품질시험 일부 누락 등 품질관리 미흡 사례 1건, 건설업 무등록자에 대한 하도급 및 시공참여 등 불법하도급 사례 9건 등 총 14건을 적발했다.

◇ 국토부 직권으로 현엔 ‘영업정지’ 검토

국토부는 이번 사고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현엔 등에 대해 직권으로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현엔은 중대 사고가 일어났고 사망자 수도 많기 때문에 국토부가 직권 처분할 계획”이라며 “영업정지 등을 포함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2022년 7월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부실시공에 대한 처분 권한을 지자체에서 국토부 직권으로 변경한 후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일으킨 GS건설 컨소시엄과 협력업체들에 영업정지 8개월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를 준용해 현엔, 장헌산업 등 과실 중대성을 따져 최대 12개월 이내의 영업정지가 내려질 전망이다. 직권 처분까지 4~5개월은 걸릴 예정이다. 현엔은 이번 사고를 포함해 아산 오피스텔 신축공사, 경기 평택 공동주택 신축공사 등 3곳에서 6명의 사망사고를 냈다. 김 정책관은 “현엔 등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에 대해선 동절기 등 사고가 취약한 시기에 특별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세종·안성 고속도로 붕괴사고를 막기 위해 거더의 전도방지시설, 스크류잭 해체 시기를 거더가 설치되고 거더를 연결하는 가로보 타설·양생 이후 건설사업관리기술인 승인을 거쳐 해제하는 방향으로 내년 상반기 ‘교량공사 표준시방서’를 개정키로 했다. 앞으로도 공중가설이 가능한 런처 사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발주청 기술 자문시 건설장비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하고, 런처 해체를 포함한 상세 시공계획 검토를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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