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 최고위인사는 이른바 ‘더 센 상법’과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의 국회 통과가 임박한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 법은 ‘경제 헌법’과 같아서 추후 기업의 의사결정 구도, 노사 관계 설정 등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해외 투자 같은 경영상 판단까지 제재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겠나”라고 토로했다.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반(反)기업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산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관세 폭탄, 중국 기술 굴기 등이 전례 없는 수준인데, 국내 정책 리스크는 이보다 더 크다는 불만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1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자체 소통플랫폼을 통해 국내기업 600곳, 외국인투자기업 167곳을 대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 40.6%는 노란봉투법 처리시 국내 사업 축소·철수·폐지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해외 사업 비중 확대를 거론한 기업은 30.1%였다. 노란봉투법으로 1년 내내 하청 노조들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줘야 할 수 있는 만큼 아예 한국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국민 1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에서도 국민 76.4%는 “노사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산업계에 따르면 조선업(63.8%), 건설업(48.3%), 철강업(36.9%), 제조업(14.7%) 등은 사내하청 비중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 관세 협상에서 큰 역할을 한 조선업은 제조업 중에서도 협력사 비중이 높아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원·하청 기업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 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제임스 김 회장은 이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나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경제계는 노란봉투법은 최소 1년 이상 유예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만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노란봉투법은) 가보지 못했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인식한다”며 선을 그었다.
‘더 센 상법’ 후유증 역시 상당하다. 기업분석업체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오너가 있는 자산 상위 50대 그룹의 상장사 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는 계열사 130곳을 분석해보니 오너일가의 우호지분율은 40.8%였다. 그런데 1차 상법 개정에 따른 합산 3%룰(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과 이번 2차 개정안의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모두 적용하면, 40.8% 중 37.8%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 기업들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25.9%), SK(39.6%), 현대차(32.1%), LG(40.8%) 등 4대 그룹 의결권 상실률은 40% 안팎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임죄 형벌 △제재 일변도의 산업 재해 처벌 등도 산업계를 옥죄는 정책들이다. 특히 배임죄는 ‘고무줄 잣대’로 불릴 정도로 적용 기준이 방대하고 모호한데, 이에 따른 기업인 처벌은 주요국들보다 유독 과도하다는 특징이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국회는 배임죄 제도 개선 논의를 조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