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불닭볶음면이?” 연변발 ‘칠면조 국수’의 정체는[먹어보고서]

경제

이데일리,

2025년 8월 31일, 오전 09:35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무엇이든 먹어보고 보고해 드립니다. 신제품뿐 아니라 다시 뜨는 제품도 좋습니다. 단순한 리뷰는 지양합니다. 왜 인기고, 왜 출시했는지 궁금증도 풀어드립니다. 껌부터 고급 식당 스테이크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볼 겁니다. 먹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갑니다. 제 월급을 사용하는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편집자주>

불닭볶음면(오른쪽)을 모방한 듯한 중국 제품 ‘칠면조 국수’(왼쪽). 캐릭터, 로고, 색상까지 전반적으로 닮은꼴이다. (사진=한전진 기자)
최근 중국 연변 출장 중 방문한 마트에서 라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익숙한 닭 캐릭터에 매운 고추, 검정·빨강 톤의 포장지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름은 ‘칠면조 국수’. 삼양식품(003230)의 불닭볶음면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호기심에 한 봉지를 집었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370원. 일단 ‘싼맛’에 먹어볼 만한 조합이었다.

제품명만 바꿨을 뿐, 패키지 디자인과 구성은 불닭볶음면과 거의 흡사했다. 면은 사각형으로 된 유탕면이고, 붉은 유성 소스와 분말 스프, 후레이크까지 3종 세트로 구성됐다. 단, 면 중량은 확연히 적었고 스프의 함량도 다소 부실했다. 정품 대비 품질은 떨어지지만 ‘비슷하게는 만든’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끓는 물에 면을 익힌 뒤 소스를 넣자 묘한 향이 퍼졌다. 기존 불닭볶음면의 고추장 베이스의 묵직한 매운맛과는 다른 방향이다. 중국 특유의 춘장 냄새가 유성소스에서 강하게 났다. 간장 베이스의 자극적인 풍미가 입 안을 지배했다. 매운맛도 훨씬 약했다. 신라면보다 조금 더 매운 정도로, 불닭볶음면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면발도 다소 질기고 밀가루 향이 강했다. 오히려 면보다 소스의 특이함이 더 도드라진다. 유성 소스를 두껍게 코팅하듯 면에 비벼먹다 보면 ‘이게 불닭이었나?’ 싶은 순간이 오지만, 입안에 남는 춘장 향이 그 환상을 단박에 깨준다. 짝퉁은 역시 짝퉁이다.

조리 후 접시에 담은 ‘칠면조 국수’. 겉보기엔 불닭볶음면과 유사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사진=한전진 기자)
‘칠면조 국수’(왼쪽)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오른쪽)의 구성. 면 형태와 스프 구성까지 매우 유사하다. (사진=한전진 기자)
이 제품은 단순한 지역 제품이 아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칠면조 국수 등 관련 제품들은 밀수(?) 형태로 연변뿐 아니라 북한 등지에도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사는 중국의 한 중소 식품가공업체로, 삼양·농심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OEM·ODM(다른 상표로 제품을 대신 제조·수탁생산하는 방식) 위주의 라면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다양한 브랜드 이름을 붙여 유통하는 구조다.

실제 현지 마트에는 이 칠면조 국수뿐 아니라, 한국식 짜장면을 표방한 유사 제품들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격은 대부분 1위안도 채 안 되는 수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국 식품 이미지를 그대로 모방해 파는 전략이 확연했다.

이처럼 불닭볶음면 짝퉁은 중국 전역에서 범람하고 있다. 현지 SNS에선 정품을 본떠 만든 유사품 리뷰가 수없이 올라온다. 그런데도 진짜 불닭볶음면이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유사품을 직접 경험해보니 정품만이 채워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깊이감 있는 매운맛, 깔끔한 마무리, 그리고 철저한 완성도. 이것이 바로 브랜드가 만든 ‘초격차’다.

오히려 이러한 모방 제품의 확산은 정품의 상징성을 강화하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낳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불닭볶음면이 하나의 카테고리처럼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 아닐까. ‘콜라’ 하면 코카콜라가 떠오르듯, ‘불닭’ 하면 삼양이 먼저 연상되는 시대다. 모방은 당연히 경계해야겠지만, 그 존재 자체가 불닭볶음면의 독보적 지위를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연변 현지 마트에 진열된 ‘칠면조 국수’. 한국식 짜장면을 표방한 유사 제품들과 함께 판매되고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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