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일 경기도 의왕시 전력거래소 경인지사를 찾아 전력 당국 관계자와 유사시 전력망 안정 운영 체계를 살피고 있다. (사진=기후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 본사를 찾아 전력수급 관리 현황을 살피고 있다. (사진=산업부)
그런데 전력 수요가 치솟는 여름은 이미 지나갔는데 당국이 왜 이렇게 전력망 운영에 큰 신경을 쓰는 걸까요.
◇전기 사용량 팍 줄었는데 왜
추석 연휴 기간의 과잉공급 우려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공기나 물처럼 중요해진 전기는 사용하기에 매우 편리하지만 저장이 어려운 탓에 당국 차원에서 관리하는 데 어려움도 큽니다. 휴대폰을 충전할 정도의 소량의 전기는 보조 배터리로 저장 가능하지만, 가정, 상점, 기업이 쓰는 정도의 양을 저장하는 건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당국은 그래서 하루에도 밤낮으로 변하고 1년 중 여름·겨울엔 급증하고 봄·가을엔 급감하는 전력 수요량에 맞춰 공급량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통상 원전 발전 전력을 바닥에 깔고, 석탄·가스 발전량을 수요에 맞춰 조절하는 방식으로 전력계통 내 전압을 60헤르츠(㎐)±0.2㎐ 범위 내에서 맞춰 왔죠.
그런데 완연한 가을이 돼 에어컨도 히터도 필요 없는 상황에서 엿새간 대부분의 공장과 상점이 멈추는 이번 추석 연휴는, 전력 당국에 익숙지 않은 새로운 도전 과제입니다. 지금까진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에 늘어나는 발전량에 맞춰 발전소를 더 짓는 게 문제였다면, 이제 이렇게 늘린 발전소를 어떻게 제때 멈추느냐가 문제가 된 겁니다.
이 같은 전력 수요관리, 전력계통 주파수 관리에 실패하면 발전기가 연쇄적으로 고장 나고 자칫 대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기는 공급량이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너무 많아도 큰 문제입니다.

전력 당국이 지난달 16일 가을철 경부하기 대비 전력계통 안정화 모의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산업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화입니다. 불과 한달여 전인 지난 8월25일 오후 6시의 전력수요는 96.0GW로 역대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전력계통에 편입되지 않은 자가발전량까지 포함한 총수요 추산치는 역대 가장 높은 104.1GW였습니다. 그랬던 전력수요를 한달 새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야 하게 됐습니다.
실제 완연한 가을이 되며 전력 수요는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전날(2일) 기준 전력수요는 낮 최대치도 76.3GW, 새벽 최저치는 54.3GW까지 줄었습니다. 오늘(3일) 새벽 수요는 52.5GW로 전날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10월 3일 오전 9시20분 현재 실시간 전력수요 변동 추이. 희미한 표는 전날(2일) 24시간 추이다. (표=전력거래소)
당국은 이에 대비해 이미 발전소 끄기에 돌입했습니다. 국내 전력공급의 약 28%를 도맡은 석탄발전소는 55곳 중 42곳이 ‘일시정지’ 했습니다. 같은 비중의 가스발전소도,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원전도 발전량을 가급적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원전은 쉽게 껐다 켰다 할 수 없는 만큼 26기 중 현재 정기점검 중인 4기의 재가동 시점을 최대한 늦출 예정입니다.
◇대정전 우려 더 커질 수도
당국이 온 힘을 기울여 대응하는 만큼 당국도 전문가도 올가을 대정전 우려는 크지 않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응 가능한 수준의 변화라는 판단입니다. 한국은 1971년 9월 발전소 고장에 따른 연쇄 효과로 대정전을 경험한 적 있지만, 그 이후 50여년간 국지적 정전 외 국가 차원의 대정전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정전의 우려는 더 커질 전망입니다. 올 4월 국가 전체 전력망이 마비된 스페인 대정전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말란 보장은 없다는 겁니다.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선 대체로 기존 석탄·가스 화력발전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대체하는 과정에서 전력 수급관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유력하게 나옵니다. 스페인은 지난해 기준 전체 전력의 57%를 재생에너지로 공급 중입니다.

태양광 발전설비와 송전선로. (사진=게티이미지)
우리는 2050년 탄소중립, 완전한 탈탄소 목표를 가진 만큼 석탄·가스발전은 차츰 퇴출되고 이를 태양광과 풍력, 원전이 대체하게 됩니다. 이들 자원은 모두 석탄·가스발전보다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늘리고 줄이기가 훨씬 어려워지는 만큼 전력 계통 관리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와 당국도 현재 전력 수급 조절 역할을 하는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나 양수발전 등을 대폭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진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춰 온 태양광 발전설비도 앞으론 전력계통 안정화에 맞춰 지속운전 기능을 갖춘 고성능 인버터 설치가 사실상 의무화합니다. 장기적으론 남는 전력을 수소 에너지로 바꿔 활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