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박준형 기자]“미국은 높은 관세로 압박하고,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주 4.5일제 도입 추진 등 노동 환경은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추석 명절 분위기가 나겠습니까”
최근 저녁 자리에서 만난 A 중견기업 사장에게 “명절 잘 보내십시오”라는 인사말을 건네자 돌아온 답변이다. 기업 하는 사람 입장에서 기업 하기 좋았던 시절이 언제 있었겠냐마는 요즘에는 정말 회사 문 닫고 편히 쉬고 싶다고 그는 한숨지으며 털어놨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기업인들 중 감히 대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지만 주변 기업들의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고 A 기업 사장은 전했다.
대만에 1인당 GDP가 뒤지게 되고, 0%대 경제성장률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 때에 정부가 일하기 보다는 쉬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기업인들도 많았다. 수도권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B 중견기업 사장은 “한국과 해외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이 아직 본격적으로 주4일·주4.5일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며 “누군들 놀고 싶지 않겠냐. 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지도 않은 한국이 경쟁국들에 비해 휴일만 먼저 늘려 나가면 기업인들이 어떻게 좋은 제품들을 만들 수 있겠냐”고 하소연 했다. 한국생산성본부(KPC)가 최근 발표한 ‘노동생산성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7개국 중 24위를 기록했다. 최근 기자와 인터뷰 한 C 중견기업 사장은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소 인원을 3교대 하며 연구·개발 활동을 24시간 지속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알았다. 대만을 이기려면 이들 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겠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라고 변해버린 기업 환경을 걱정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감안하면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보다는 매각하거나 문 닫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안 좋기는 벤처·중소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통계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1~7월 스타트업 투자 건 수는 총 587건으로 전년 동기(900건) 대비 34.77%나 감소했다. 한 바이오벤처기업 관계자는 “경기 불안정성이 커지자 돈은 몇몇 성과가 나오는 기업들에만 몰리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문을 닫는 벤처기업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경제는 분위기다. ‘힘들다, 어렵다’ 말하면 실제로 악화되게 되고, ‘할 수 있다, 열심히 해보자’ 하면 다시 살아나기 마련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깨가 처진 기업인들을 다독거리며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정책들을 지금 내놓아야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열심히 일해온 노동자들은 물론, 기업을 잘 이끌어온 경영인들도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