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삼남매’ 키운 워킹맘 “이건 꼭 챙기세요”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0월 03일, 오후 01:04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서울대,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합격한 삼 남매. 그 비결이 유전자일까, 사교육일까. 영어 울렁증에 책은 싫어하고 수학은 포기 상태인 우리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불안합니다. 서울에선 다들 선행학습에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는데. 우리 집 아이들만 늦은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안고 펼친 책이 바로 양소영 변호사의 ‘오늘도 불안한 엄마들에게’(담담사무소 펴냄)입니다. 양 변호사는 25년간 가사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서울대·MIT’ 합격 삼 남매를 키워낸 워킹맘입니다. 이혼·상속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법무법인 숭인의 대표 변호사이자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을 열기 전에는 원더우먼·스마트우먼의 성공기, 자기 자랑(?)을 다룬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미친년처럼 소리쳤다…완벽한 엄마는 없다

‘오늘도 불안한 엄마들에게’(담담사무소 펴냄)에 담긴 그래픽.
그런데 책 서문부터 이같은 제 선입견은 단번에 깨졌습니다. 이 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걷는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진흙탕에서 고군분투한 전쟁기를 다룬 책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나는 왜 이렇게 미친년처럼 소리를 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을까…나는 정말 미쳐가는 걸까? 핸들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었습니다”라는 양 변호사의 서문부터 머리를 때렸습니다. 학원비 아낀다며 첫째 아이 수학 문제집을 같이 풀다가 ‘샤우팅’을 하고 미안함에 무너졌던 제 자신의 민낯을 마주한 것 같았죠. “우아한 육아는 없다”는 문구에 먹먹해졌습니다.

양 변호사의 삶도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변호사 집안의 유복한 집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고요. 전남 함평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양 변호사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스파르타식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양 변호사의 학창시절 별명은 ‘양돼지’. “만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미련한 공부벌레였다”고 합니다. “(키우는) 아가는 어디 흘리지 마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고, 사법고시에는 여섯 번이나 떨어졌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흑역사까지 썼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놀라게 됩니다.

대치동 아닌 우리 방식대로…중2부터 달렸다

그러면서 “어떻게 했길래 삼 남매 모두 서울대에 합격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더 커지게 됩니다. 물론 양 변호사 역시도 다양한 것을 시도해봤다고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6개월 살면서 영어 유치원을 시도해보고, 엄마표 영어도 해보고, 대치동 유명 학원 설명회까지 가봤다고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른바 ‘대치동 교육법’이 삼 남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양 변호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제 자책만 커지더군요”라고 돌이켰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막내 아들이 레벨 테스트까지 통과해 어렵게 들어간 대치동 유명 수학학원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반복되는 레벨 테스트와 강압적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에 아이가 선택한 일반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학원은 아이가 직접 고른 학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엄마 모임은 과감히 끊었다고 하고요. 모임을 다녀오면 아이의 미래와 현재의 불안이 부딪혀 힘들었다고 합니다. 정보를 얻기보다는 조급증만 키웠던 엄마 모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아이들만의 공부 로드맵과 방법론을 꾸준히 실천했습니다. 우선 아이들 초등학교 때는 ‘학원 뺑뺑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미리 힘을 빼지 않고 주말엔 쉬고 많이 놀았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스퍼트는 중2 때부터 했고요. ‘잘하는 것은 더 잘하게’, ‘넓고 얕게가 아니라 좁고 깊게’라는 원칙을 가지고 아이들이 잘하는 걸 밀어줬다고 합니다. 수학을 잘했던 막내 아들이 영재고를 거쳐 서울대·MIT까지 합격한 밑바탕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열심히 돕는다’는 교육 원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22일 출간된 300쪽 분량의 에세이 ‘오늘도 불안한 엄마들에게’(담담사무소 펴냄).
잠을 늘리는 ‘역발상’도 실천했습니다.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말처럼 약까지 먹으며 아이들 잠을 줄이게 할 게 아니라는 것이죠.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정신으로 아이들 수면 시간을 확보하려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도보 5분 이내 집으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는 고3 시절엔 막내 아들에게 운동화를 선물해 공부만 하지 말고 운동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고요. 쉰 넘어 마라톤 완주에 나선 양 변호사는 뛰어보니 마음 속 장막이 걷히면서 작은 성공의 쾌감이 컸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달리기를 해보면서 작은 성공을 하게 되면, 이것이 디딤돌이 돼 큰 성취를 이룰 것이란 믿음도 커졌다고 하고요 .

서울대보다 중요한 ‘우리 집 헌법’

이외에도 책에는 자녀들이 했던 학습법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수시로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성실파’ 첫째 딸의 숲 공부법, 정시로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둘째 딸의 수학 오답노트의 4단계 공부법, 뉴진스 흉내를 내다가 깨달은 삼남매 공부법(백지 테스트·인터넷 강의 두 배 공부법·상상 공부법), 승리의 V자 성적을 만들어낸 최고의 습관인 숙제 공부법, 자신감을 되찾아준 후행 공부법,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고 도입한 ‘100권 책 읽기 프로젝트와 스티커 보상’, ‘엄마표 독서실험실’ 방법 등이 책에 꼼꼼히 담겨 있습니다. 유튜버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면서도 ‘스마트폰 감옥’ 설정 등으로 핸드폰을 어떻게 조절했는지도 소개돼 있고요.

가족만의 원칙도 눈길을 끕니다. 삼 남매 간 다툼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인 ‘우리 집 헌법’을 도입한 게 인상 깊었습니다. 냉장고에 커다랗게 붙여 놓은 ‘송파 삼 남매네 헌법’은 제1조 ‘우리 집 최고의 가치는 행복이다’, 제2조 ‘우리는 실수로 배우고 서로 용서한다’, 제3조 ‘숙제·공부는 스스로 한다’, 제4조 ‘부모님이 없을 때 권력은 첫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첫째로부터 나온다’, 제5조 ‘중요한 일은 가족회의에서 함께 결정한다’, 제6조 ‘우리는 함께할 때 가장 강하다’로 구성돼 있습니다. 양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대학 등록금은 스스로 마련해라 △엄마 아빠는 너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강조했다고 하네요.

막내 아들은 가족 헌법에 대해 “마구 엉킨 정글 같던 저희 삼 남매에게 확실한 위계와 큰 틀의 규칙을 정해주셨기 때문에 그 선 안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다는 안정감과 해방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둘째 딸은 “(슬럼프에도) 다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엄마의 간섭과 잔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엄마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길로 새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첫째 딸은 “스무 살이 되면 나가 살거나 집에 살아도 집세를 내야 한다고 하실 때는 정말 청천벽력 같았다”며 “엄마가 말한 독립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시려는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말합니다.

진짜 교육의 핵심은 ‘믿음과 독립’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는 ‘오늘도 불안한 엄마들에게’ 책의 저자 인세를 칸나희망서포터즈에 전액 기부해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지원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25년 가사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단법인 칸나희망서포터즈 대표 △전 대한변협 공보이사 △‘인생은 초콜릿’ 에세이, ‘상속을 잘 해야 집안이 산다’ 저자 △YTN 라디오 ‘양소영변호사의 상담소’ 진행 △EBS 라디오 ‘양소영의 오천만의 변호인’ 진행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진=강영호)
그밖에도 ‘시간제 불안’, ‘불안 일기 쓰기’ 등 다양한 팁이 나오지만 책을 읽을수록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판단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이런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 책 곳곳에 묻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양 변호사는 부모의 역할을 자녀가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받쳐주는 든든한 어항 역할이라고 표현합니다. 5년간 거의 자라지 않다가 단 6주 만에 30m까지 자라는 대나무 모습이 우리 아이들 모습이라며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결국 이 책은 서울대 합격 매뉴얼이 아닙니다. 서울대 합격한 자녀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려고 책을 들었다가, 읽을수록 부모 교육서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불안한 엄마가 어떻게 아이의 독립을 믿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 나갔는지를 다룬 긴 여정을 함께 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독자 자신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를 되돌아 보는 성장 에세이를 읽은 느낌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을 키우며 고군분투 중인 부모들이 꼭 챙겨야 할 것은 서울대 합격 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의 독립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믿음이 아닐까요.

“세 자녀가 전부 서울대에 합격한 비법이 뭐냐고, 인터뷰 자리에서 질문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제가 내린 답은 역시 ‘독립’입니다. 독립을 향한 큰 그림을 아이 스스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독립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따져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기 생각을 뻗어 가려면, 삶에 대한 건강한 자세가 부모에게 먼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부모가 먼저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때 아이도 독립을 꿈꿀 수 있습니다. 혹여 아이가 세운 독립의 목표가 부모 마음과는 다른 길이라 해도, 그 길은 절대적으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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