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ews1 이밝음 기자
이재명 정부가 주4.5일제를 핵심 국정과제로 공식화하자, 고용노동부가 법제화와 시범사업 기반 마련에 착수하며 제도화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노사 합의를 통해 주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재정 및 행정 지원을 제공하는 '워라밸+4.5 프로젝트.를 민간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노사정 협의체인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출범시켜 연내 로드맵 마련과 입법 논의에 돌입했다.
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주4.5일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생성형 AI 도입 이후 국내 전체 노동시간은 평균 3.8% 줄어, 주 40시간 기준 약 1.5시간 단축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미국(5.4%)보다는 낮지만, 특히 경력이 짧은 노동자에게 더 큰 효과가 나타나 숙련도 격차를 완화하는 '평준화 효과'를 보였다.
직업별로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AI 활용률(69.2%)과 노동시간 감소율(2.8%) 모두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AI 활용이 노동시간 단축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AI 확산에 따른 잠재적 생산성 향상 효과를 약 1.0%로 추정하면서 "활용 경험 축적과 기술 고도화에 따라 향후 효과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 단순히 근로시간 감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AI·로봇 등 첨단기술 도입과 연계되어 생산성 향상 및 업무 방식 혁신을 동반할 때 실현 가능한 과제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 "주4.5일제, 노동시간 단축 마중물"…법제처도 입법 준비 중
정부는 주4.5일제를 '노동시간 단축의 마중물'로 규정하고 있다. OECD 평균(1752시간)에 비해 여전히 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1859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구조적 과제도 남아있다. 당국은 "장시간 노동 개선과 일하는 방식의 효율화를 통해 실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제처도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이다. '실노동시간 단축지원법(가칭)'을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며, 세액공제·인건비 지원 등 인센티브 제공을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제도의 강제 도입보다는 '시범사업–세제 지원–법제화'의 3단계 로드맵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은 거세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주4.5일제는 기업 부담을 키우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이유로 주52시간제 예외 확대를 검토했으나, 정권 교체 후 정책 기조가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보티즈의 실외 자율주행 로봇 ‘일개미’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직장인들이 주문한 점심 식사를 배달하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AI와 협업 확산 "생산성 혁신 기대"…재계는 "경쟁력 저하 우려" 반발
AI와 물리적 로봇의 확산 여부도 변수다. 국내 근로자 중 15%는 이미 업무 현장에서 로봇과 협업 중이며, 이 중 11%는 자율성을 갖춘 로봇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향후 전체 근로자의 27%까지 협업이 확산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주4.5일제 도입이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히려 기술 발전이 노동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상쇄하거나, 새로운 효율성을 창출할 여지가 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서비스·사무직 분야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주4.5일제는 '삶의 질 향상'과 '생산성 혁신'을 동시에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첨단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추가로 노동시간까지 줄이면, 글로벌 무대에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론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책 설계의 성패는 기업 현장의 체감 효과와 기술 혁신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결합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향후 제도 추진 과정에서 △경영계 부담 완화 장치 △중소기업·서비스업 중심의 맞춤형 지원 △AI·로봇 활용과 결합된 노동시간 단축 모델 설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추진단을 중심으로 격주 전체회의를 열어 로드맵 마련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주4.5일제 이행 방안, 생산성 제고 등 주요 의제를 중심으로 워킹그룹을 운영해 논의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실노동시간 단축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체제와 산업현장의 근본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단번에 강제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노사가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찾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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