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K기업]②석화·철강·TV…中 공세에 '백기' 반도체 '위태'

경제

뉴스1,

2025년 10월 04일, 오전 07:00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중국 경쟁사들은 우리보다 자본, 인력에서 3배, 4배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 최고경영진을 소집해 개최한 사장단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중국의 행보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이 체감하는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우리나라 주력 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은 결국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대한민국 대표 수출 상품인 TV는 이미 중국에 중저가 시장을 내줬고 세계 1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될 전기자동차는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를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수출 제품인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아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자본과 물량 공세,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공세를 이어오다 최근에는 기술 경쟁력까지 갖추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나라 일부 업종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위기의 석화·철강 업계…배경에는 中의 물량 공세

2010년대만 하더라도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석유화학 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과거 석유화학 기업은 대기업 중에서도 연봉이 가장 높을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다른 업종에서 경력직을 채용하면 지원자들이 대부분 석화 업종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라고 전했다.

석화업계 위기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과거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지만 중국 석화 업계는 나프타분해시설(NCC) 증설에 나선 결과 최신 설비와 저렴한 인건비로 확보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범용 제품군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고 있다. 중국의 성장에 우리나라 석화업계는 결국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신세가 됐다. 석화업계는 과잉 설비를 감축하고 동시에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범용 제품으로는 중국과의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됐던 철강업계 역시 고난의 시기를 걷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고율 관세로 어려움이 가중됐지만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가 도화선이 됐다. 존폐의 갈림길에 처한 철강업계 역시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저부가가치 제품은 감산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 키워드가 된 조선업계 역시 고민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 조선소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잇달아 대형 계약을 확보하고 있어서 위기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우리 기업들은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에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세계 곳곳의 수주전에서 중국 기업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中, 중저가 TV 시장 잠식하더니 프리미엄 시장서도 韓에 '도전'

중국 가전 기업들도 우리를 점점 위협하고 있다. 유럽 가전 전시회인 'IFA 2025'는 중국 기업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중국 가전 업체들은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신제품으로 한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의 한 관계자는 "작년까진 (중국 기업이) 한 발짝 뒤였다. 이젠 반 발짝도 안 된다"며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TV 시장에선 중국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TV 사업은 어렵다. 한국 업체가 다 어렵다"며 "중국의 공세가 당분간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TV 시장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17.6%), TCL(13.9%), 하이센스(12.3%), LG전자(10.8%), 샤오미(5.1%) 순이다. 중국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1.3%로 우리나라의 점유율(28.4%)을 넘어섰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무장한 중국은 이미 중저가 TV 시장에서 우리나라를 밀어냈고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을 비롯한 전장 등 신사업 분야에 힘을 주고 있다. 시장 경쟁 과열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역시 중국의 위협이 시작됐다. 아직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점유율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은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범용 D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4세대인 HBM3, 2027년에는 5세대인 HBM3E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은 과거 가격 경쟁력으로 우리 기업들을 위협했다면 지금은 기술력까지 보유하고 있어 무서운 경쟁자가 됐다"며 "극복을 위해선 최첨단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goodd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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