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현재 금융 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내는 ‘금융계급제’가 된 것 아니냐”고 발언을 두고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취약계층이 고금리 대출에 몰리고 금융 접근성 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딴죽을 걸긴 어렵다. 하지만 ‘계급제’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프레임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남겼다.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뿐 아니라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정책 효과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금리는 차주의 ‘소득’보다 ‘신용 위험’을 가격에 반영한다. 저소득자라고 해서 자동으로 고금리 대출을 쓰는 것이 아니며 고소득자라고 해서 모두 우량 차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소득 상위 30% 가운데 신용점수 840점 이상 고신용자는 674만명이지만 연소득 2100만원 미만의 하위 30%에도 고신용자가 202만명이나 된다. 반대로 신용점수 664점 이하 저신용자층에서는 고소득자(43만명)가 저소득자(34만명)보다 더 많다. 소득과 신용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자동차 보험을 떠올려보면 이해는 더 쉽다. 보험료는 운전자의 연봉이 아니라 사고 이력과 운전 습관에 따라 매겨진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자와 저신용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인식이 오히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저소득 차주에게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포용금융이 목표라면 정책적인 정교함이 필요하다. 성실 상환을 이어가며 신용을 지켜온 저소득층이 실질적인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시장 신호와 위험 평가 체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선의와 원칙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금융 개혁의 출발점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의욕 넘치는 정책을 내놓는 건 당연하다. 다만 뭔가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부화뇌동’해 내놓는 정책은 곤란하다. 정교하지 못한 정책은 부작용만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