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이블리)
27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 둔화와 쿠팡·네이버 중심의 구도 고착화로 중형 플랫폼의 취약성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2년간 버티컬 이커머스 플랫폼의 퇴출이 가속화되면서 중형 이커머스 섹터 전반에 구조조정 압박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서울스토어·집꾸미기·펀샵·한스타일 등 다수 플랫폼이 영업 종료·매각 등 정리 국면에 들어갔고, 재무구조 악화로 회생 절차에 돌입하거나 투자사와 구조조정을 협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매출 성장보다 현금흐름·정산 구조가 더 큰 평가 요소로 부상하며 투자심리 자체가 위축된 영향이다.
에이블리는 최근 가장 큰 변동에 놓인 플랫폼이다. 회사는 2019년 이후 2023년을 제외하고 매해 적자를 내고 있으며, 같은 기간 내내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최근 국내외 투자자를 중심으로 2000억원 수준의 신규 자금 유치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알리바바로부터 1000억원 투자를 받으며 신주 기준 기업가치 3조원을 인정받았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라운드에서 에이블리의 기업가치는 약 7000~8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에이블리 측은 "여러 기관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있으며, 회사의 중장기적 성장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되는 투자 규모는 직전 라운드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수준이라며, 시장에 거론된 규모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브랜디·하이버 운영사 뉴넥스 역시 대표적인 예비유니콘 회수 실패 사례로 꼽힌다. 뉴넥스 매출은 2022년 1191억원에서 지난해 196억원으로 감소하며 2년 새 80% 넘게 줄었다. 회사는 지난 9월 회생절차 개시에 들어갔다. 한때 7000억~8000억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예비유니콘이 법정관리로 전환된 대표 사례가 된 것이다.
명품 거래액 성장세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차기 대형 딜 후보로 언급됐던 머스트잇은 사옥 매각후 유동성 확보에 나섰고, 희망퇴직·차입금 감축 등 비용 구조조정을 병행 중이다. 동시에 삼정KPMG를 주관사로 전략적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경영권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명품 플랫폼 트렌비 또한 인력 감축·광고비 축소 등 비용 절감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중고 명품 중심으로 전환했다.
이들 플랫폼의 공통 분모는 외형 확장을 위해 적자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패션·명품 플랫폼은 광고비·쿠폰·무료배송 부담이 크고, 거래액 확대를 위해 셀러 정산을 앞당기는 선정산·외부대출을 활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고금리·소비 위축 국면에서 외부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나빠지자 이 구조가 즉각 유동성 압박으로 이어졌고, 재무 취약성이 한꺼번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쟁 압박도 겹쳤다. 쉬인(SHEIN),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발 플랫폼들은 초저가 제조망과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내 사용자 기반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동남아의 쇼피(Shopee)는 패션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한국 셀러들의 동남아·대만 등지 판매 창구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 판매자들의 입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신상품 회전 주기, 단가 구조, 재고 운영 효율 등에서 글로벌 플랫폼과의 격차가 크다 보니, 할인·마케팅 중심으로 외형을 키워 온 국내 패션 플랫폼의 경쟁 여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광고·할인으로 키운 플랫폼은 정산·채권 구조까지 같이 보지 않으면 투자나 인수 대상이 되기 힘들다”며 “최근에는 중국계 플랫폼의 시장 확대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쟁이 더욱 까다로워진 만큼 재무 구조나 운영 리스크가 조금만 불안해도 투자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