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DX 수요에 문 열린 일본…“지금이 기회” 韓스타트업 도전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1월 30일, 오후 07:06

[도쿄(일본)=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미국은 매주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다보니 한국의 스타트업 기술을 접목하기 쉽지 않아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미덕’인 일본은 한국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솔루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 서비스가 미국에 진출하는 것보다 일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지 않나 느끼고 있습니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도쿄(사진=글로벌비즈니스센터)
인공지능(AI) 마케팅 자동화 솔루션 기업 ‘파이온코퍼레이션’의 정범진 대표는 일본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회사는 기업들의 마케팅 포인트를 자동으로 생성해 공급하는 기업으로 일본 법인 설립 후 라쿠텐 이치바, 미쓰비시 자동차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 토라노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일본 기업들이 AI 시대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경쟁력 유지가 어려울 것 같다는 관점에서 한국 서비스가 일본에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日, 2022년 스타트업 창출 원년 선포…韓스타트업에 기회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인력난과 함께 디지털 전환(DX) 수요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새로운 솔루션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전히 진입 장벽은 높지만 지난 2022년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창출의 원년’으로 선포한 이후 외국 기업들에 대한 장벽이 다소 낮아졌다.

도쿄에 소재한 GBC와 K스타트업센터 도쿄에는 제조·모빌리티·이커머스·헬스케어·팬덤 플랫폼까지 49개 한국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일본의 규제 완화 기류 속에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을 두드리는 진출이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일본을 찾는 이유로 기업들은 무엇보다 탄탄한 내수 시장을 꼽는다. 자동차·전자·가전·부품 등 제조·모빌리티 산업 인프라가 두터울 뿐만 아니라 유통·커머스·엔터테인먼트까지 기업간거래(B2B) 시장도 촘촘하게 연결된 구조다.

팬덤 플랫폼 ‘비마이프렌즈’는 일본을 ‘필수 시장’으로 본다. 이 회사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팬덤 플랫폼 비스테이지를 통해 아티스트와 브랜드 지적재산권(IP)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스노우맨 등 현지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해 일본 IP만으로 35개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김보혜 비마이프렌즈 부사장은 “일본은 아이돌과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소위 ‘덕질 문화’가 세대와 가족을 가로질러 뿌리내린 시장”이라며 “같은 굿즈를 팔아도 일본 팬의 객단가는 한국과 다른 나라보다 높고 내수만으로도 팬덤 비즈니스가 성립되는 구조라 진출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미쓰비시부동산 기업형 벤처캐피털(C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오프라인에서도 팬덤 비즈니스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사진=글로벌비즈니스센터)
정하림 GBC 도쿄 센터장은 “2022년 말에 일본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타트업 육성을 기치로 기시다 전 전 총리가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발표를 하면서 문호가 넓어졌다”며 “깐깐하던 일본 은행이 한국 기업에 계좌개설을 허용하면서 한국 스타트업도 일본 시장에서 레퍼런스 확보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은 더 속도 내야

기회만큼 위험도 상존한다. 비자 문제와 인력 채용은 높은 허들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표는 “법인 설립 과정에서 납입금 처리, 법인카드·일회용 비밀번호(OTP) 발급까지 모든 절차가 오프라인·우편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수 주일이 걸린다”며 “문화적인 문제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버티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력 채용난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은 구직자 우위 시장이 이어지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외국 스타트업은 지원자 확보부터 쉽지 않다. 의료기기 업체 대표는 “채용 사이트에 비용을 들여 공고를 냈는데 두 달 동안 겨우 두 명을 채용했고 두 분 모두 60대였다”며 “젊은 인재는 대기업이나 일본 로컬 기업을 우선 선택하는 구조라 외국 스타트업은 인건비뿐 아니라 채용 자체에 드는 시간·비용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사진=김영환 기자)
비자도 걸림돌이다. 반도체 제조업체 관계자는 “가족 연계 비자를 신청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가족들과 떨어져 있다”며 “비자가 나와야 주택 문제도 해결하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정리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라고 했다.

이를 비롯한 현지 인증과 인허가, 금융·노무·세제 등에서 ‘패스트트랙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특히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일본 인허가가 복잡해 초기 진입이 어려운 분야기도 하다.

정 센터장은 “일본 내에서도 번화가인 토라노몬 입주, 일본계 은행 계좌 개설, 도쿄도 보조금 연계, 일본 지자체·대기업과의 아이디어검증(PoC) 매칭 등은 그나마 ‘첫 문’을 열어주는 장치”라며 “이제는 현지 인증·규제 대응, 인력 채용 지원 등에서 보다 정교한 패스트트랙을 만들어줘야 한국 기업의 일본 재진출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