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규칙을 설계하던 시대였다. 개발자가 모든 로직을 직접 짜 넣었고, 프로그램은 그 규칙대로만 움직였다. 그러나 현대의 AI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와 정답을 기반으로 스스로 패턴을 추론하고, 그 패턴을 함수 형태로 체화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규칙을 만들던 시대’에서 ‘데이터가 규칙을 만드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사진=챗GPT)
이를 데이터 오염(data poisoning)이라고 부른다. 데이터 오염은 AI가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악의적 공격자가 의도적으로 시스템 전체를 속여 사회적·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AI 연구에서 ‘신뢰성·보안의 핵심 위험 요소’로 여겨진다.
여기에 생성형 AI의 등장이 결정적 변곡점을 만들었다. 인터넷에는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무차별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그중 상당수는 기존 AI 모델이 만들어낸 콘텐츠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생성된 콘텐츠가 다시 AI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는 ‘AI 순환 오염(AI-self contamin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연구에서 관측되는 모델붕괴(model collapse)는 이러한 순환 구조가 실제 위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스스로 생산한 왜곡된 정보를 다시 학습하며 품질이 점차 붕괴되는 현상이 실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향후 AI 생태계의 전반적 신뢰성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경고 신호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무결성(integrity)을 확보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생성됐는지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 임의로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어야 한다. 그래야 AI가 학습하는 정보가 왜곡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기술적 요구를 구조적으로 충족시키는 가장 유력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한 번 기록된 데이터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게 하는 변조 불가능성(immutability)을 기본 설계로 갖고 있다. 또한 기록의 생성 시점과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투명한 이력을 제공한다. 그 결과 블록체인은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신뢰성을 보존하는 인프라로 기능한다. AI가 고도화될수록 데이터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록체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블록체인의 신뢰성은 데이터의 ‘진실성(truth)’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잘못된 데이터라도 블록체인에 올리면 그대로 영구 보존된다. 이것은 설계적 한계가 아니라 구조적 특성이다. 블록체인이 보장하는 것은 “이 기록이 사후에 변경되지 않았다”는 무결성뿐이다.
현실의 사실을 블록체인에 입력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오라클(Oracle)이라는 외부 데이터 제공자가 필요하다. 블록체인은 외부 세계를 스스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라클이 입력하는 정보가 거짓이면 블록체인도 거짓을 영구히 기록한다. 이른바 ‘오라클 문제’는 블록체인 시스템의 신뢰가 결국 오라클의 신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와 블록체인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효율적 조합이다. 결국 AI는 의미를 생성하는 기술이고 블록체인은 기록의 ‘무결성’을 보장하는 기술일 뿐 ‘진위’까지 확인해주지는 않지만, 두 기술이 결합해야 고품질의 신뢰 가능한 AI가 가능해진다.
앞으로의 시대는 AI가 인간의 사고를 보조하고 점차 대체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 시대의 핵심 질문은 “AI는 무엇을 믿고 학습하는가”이다. 블록체인은 이 질문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지능 사회의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두 기술의 필연적 결합은 앞으로의 디지털 문명을 뒷받침할 새로운 신뢰 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전공 석사 △공인회계사·세무사·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