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이차전지 중심으로 확산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와 SK지오센트릭, 롯데케미칼(011170), 솔루스첨단소재는기존에 일으킨 차입금에 적용된 재무약정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대주단으로부터 웨이버를 받았다.
웨이버는 채무자인 기업이 재무약정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대주단과 협의를 통해 일시적으로 적용 유예를 받는 것을 말한다. 최근 이차전지와 석유화학, 건설업 등 업황 부진을 겪는 기업들의 재무 지표가 악화하면서 대주단으로부터 웨이버를 받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SK서린사옥 (사진=SK)
문제는 웨이버를 받는 과정에서 금리 인상과 추가 수수료, 유동부채 전환 등 재무적 부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웨이버가 단순한 ‘선의의 유예’가 아니라 대주단이 추가적인 위험을 부담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재무약정 위반은 기업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대주단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포함한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또 약정 변경을 위해서는 심사, 법률 검토, 문서 재작성 등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약정 변경 수수료나 관리 수수료를 부과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즉 기업 입장에서는 웨이버는 유동성 압박을 완화할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금융 비용 증가라는 새로운 부담을 지우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실제 국제금융공사(IFC)를 포함한 글로벌 금융기관과 3억달러 규모의 그린론 재무약정 유예 협의를 진행 중인 SKIET 역시 다양한 방안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IET가 실적 부진 여파로 그린론에 적용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관련 재무약정을 준수하지 못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SKIET는 지난해에도 대주단으로부터 일회성 웨이버 공문을 받고 차입약정 미준수 사유를 면제받은 바 있다. SKIET는 지난 2023년 IFC와 글로벌 민간은행으로부터 폴란드 분리막 공장 증설 투자를 위해 3억달러의 그린론을 차입했다.
SK지오센트릭의 프랑스 자회사도 실적 악화로 2500억원 규모의 차입금에 대한 재무약정 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웨이버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당 차입금 전액이 유동부채로 전환되면서 단기상환 압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재무약정 미충족과 동시에 대주단이 언제든 상환을 요구할 요건이 갖춰진 만큼 만기가 짧아지는 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스카이레이크가 인수한 솔루스첨단소재도 이차전지 업황 악화 여파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3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에 대한 재무약정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솔루스첨단소재는 룩셈부르크 동박 사업 공장을 매각해 차입금 일부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대주단으로부터 웨이버를 받았다.
◇유예 조건이 재무구조 압박하는 악순환
이는 실적 반등 가능성이 높지 않은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일시적으로 재무약정 위반에 따른 리스크는 피했지만 근본적인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늘어난 이자비용과 수수료가 재무구조를 더욱 압박하며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SKIET와 한샘, 롯데케미칼은 대주단으로부터 웨이버를 받은 이후에도 실적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채무약정 충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신용평가와 기업 대출 심사 과정에서 보다 재무약정 준수 여부에 대한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재무약정 위반 시 관행적으로 웨이버를 받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자비용 상승 등이 신용평가 과정에서 후행적으로 반영되는 만큼 영향을 피하기는 어렵다”며 “한두 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반복되면 기업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국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영업활동에서 창출되는 현금으로 커버가 되는 기업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적자이거나 실적 개선 여지가 크지 않은 기업에겐 웨이버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신용등급을 책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