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항아리로 술빚는 4대 장손 "걸쭉한 K막걸리 맛, 전세계에 알릴 것"[only 이데일리]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2월 31일, 오후 07:15

미국 관세 장벽과 고환율 등 국내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던 2025년이 지나가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역시 작년의 위기가 이어지며 우리 경제 주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같이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전국 각지에 숨은 소상공인 명인들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자신들의 기술을 연마하고, 어제보다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정직한 땀방울을 흘립니다. 수십 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며 지역 경제를 책임져온 이들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최후의 보루이자 진정한 풀뿌리입니다. 단순한 가게를 넘어 지역의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 명인들의 삶과 경영 철학을 조명함으로써, 독자 여러분께는 새로운 영감을, 소상공인들에게는 따뜻한 응원을 전하고자 이데일리는 전국의 ‘강한 소상공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데일리 김응태 기자] “100년의 전통을 이어온 양조장에서 이젠 한국의 술뿐만 아니라 지역을 알리는 역할까지 하고 싶습니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가 100년 동안 사용한 발효 항아리와 전통 누룩을 사용해 술을 만들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61)는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19년 문을 연 대강양조장은 1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 속에서 세대와 세대가 맞닿은 손길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왔다. 외증조부와 조부, 부친을 거쳐온 양조장은 조 대표에게 가족의 생계이자 삶의 리듬이었다. 조 대표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양조장집 장손이었다”며 “양조장은 제 놀이터였고 그 안에서 뛰어놀며 술과 함께 자랐다. 장손이었기에 대를 잇는 일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선대와 후대가 교차하며 이어온 길은 대강양조장의 남다른 유산이 됐다. 전통 누룩과 발효 항아리, 사람의 손으로 익혀온 시간은 대강양조장이 지켜온 정신이다. 조 대표는 “술을 만드는 발효 과정은 100년 전 방식 그대로”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100년 동안 써온 발효 항아리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100년의 전통을 지켜온 그는 그 전통을 과거에만 고정하지 않았다. 조 대표는 “발효 온도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직접 개발해 과거보다 안정적인 발효 환경을 만들었다”며 “전통을 지키되 오늘에 맞게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대가 향과 거품, 술 빛만 보고 발효 상태를 읽어냈다면 알코올 도수와 산도를 계량하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더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노력이 담긴 대강막걸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가치를 알아보며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05년 노 전 대통령이 단양군 방문 당시 대강막걸리 맛에 반한 뒤 정상회담이나 국빈을 맞이하는 자리에 대강막걸리를 건배주로 사용하면서 크게 홍보됐다. 대강막걸리의 술맛은 톡 쏘고 진하며 입에 착착 감기듯 텁텁하면서도 걸쭉한 질감이 특징이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가 양조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세월의 굽이마다 한결같은 장인정신을 지켜오면서도 더 나은 방식을 찾아온 대강양조장의 기술력은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차별점이 됐다. 그 성과와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조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뽑은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됐다. 백년소공인은 업력 15년 이상의 숙련된 기술을 가진 소공인으로, 정부는 백년소공인들이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자리 잡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되면 온·오프라인 판로지원, 인증서 및 현판 제공 및 홍보, 소상공인 지원사업 우대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백년소공인은 단순히 ‘오래된 곳’에 대한 예우를 받는 게 아니라 전통의 계승, 지역 경제의 활력 등을 가치로 삼아 새로운 시도를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조 대표 역시 정부가 제공한 지원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가 새롭게 내디딘 걸음은 양조장이 가진 가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알리는 일이다. 막걸리 산업 규모가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관광형 양조장’이라는 혁신을 이식했다. 그는 “양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실제로 과거 양조장에서 사용했던 도구를 사용하며 전통을 느끼게 한다”며 “직접 술을 빚어보면 우리 술에 대한 애정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양조장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선보여 관광지로서 매력을 더했다. 조 대표는 선대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총집합해 프로그램 체험 이후에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박물관에는 과거에 사용했던 양조도구부터 막걸리 유리병, 홍보 포스터를 비롯해 선대가 사용했던 지게, 책상, 의자 등을 전시해 과거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조 대표는 “박물관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세대까지 100년의 시간이 전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양조장을 전환한 조 대표는 제주에서 40명의 4대 가족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례를 가장 인상 깊은 순간으로 꼽았다. 조 대표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단순히 술을 제조하는 것을 넘어서 문화가 있는 술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며 “최근 K술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지역 홍보도 잊지 않는다. 양조장뿐만 아니라 지역 주변이 같이 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관광명소를 소개하고 있다.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등 충북 단양군을 대표하는 절경인 ‘단양 8경’의 세부적인 위치와 양조장에서 떨어진 거리 등을 안내한다. 외국인들이나 관광객들이 양조장을 넘어 단양군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강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제품 이미지. (사진=중소벤처기업부)
그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대강양조장은 백년소공인의 의미를 ‘책임’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백년소공인은 과거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백년소공인은 전통을 기준 삼아 현대 기술을 끌어들이는 조율자”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조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우리 술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조 대표는 확고한 신념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지닌 백년소공인이 가진 문화적 가치가 더욱 빛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백년소상공인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다”며 “소상공인의 롤모델이라는 사명감, 그리고 우리 손끝에서 탄생한 상품이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재구 대강양조장 대표가 백년소공인 현판을 만지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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