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지금까지는 정상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느냐가 일감 몰아주기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정상 가격을 계산하기 어려워도 계열사가 이익을 얻었다는 점이 확인되면 부당 지원행위로 인정하는 판례와 심결례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SPC의 밀가루 지원사업과 LS그룹의 전기동(구리 원자재) 거래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정상 가격 산정에 대한 자료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이들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은 취소하면서도,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가 이득을 취했다는 점에서 부당 지원거래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1일 이데일리가 입수한 법무법인 봄의 ‘일감몰아주기 사례 분석 및 법적용 관련 쟁점 검토’ 보고서는 이 같은 판례를 예로 들어 계열사 몰아주기의 위법을 판단하는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물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의 판단 기준이 시장에서의 정상 가격이 아닌 실제 계열사가 취득한 이익의 규모와 계열사 간 거래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SPC 그룹의 밀가루 부당지원 사건은 법원이 실제 계열사의 이익 취득 여부를 살핀 케이스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20년 SPC가 7년 동안 그룹내 부당지원을 통해 SPC삼립에 414억원의 이익을 몰아줬다고 판단,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파리크라상과 BR코리아 등 제빵 관련 계열사가 밀가루 업체인 밀다원 등 계열사 제품을 구입할 때 중간단계로 SPC삼립을 통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는 이유다.
SPC가 이에 불복해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을 진행한 결과, 법원은 공정위가 제시한 정상가격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과징금 부과는 취소했다. 하지만 정상가격이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지원행위에서 계열사에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명백히 제공했다면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LS그룹의 전기동 거래 사건도 같은 맥락의 결론이 났다. 법원은 국산 과징금에 대해서는 전기동 거래와 관련해 공정위가 잘못된 정상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했다며 이를 취소했다. 하지만 계열사 LS글로벌이 거래로 얻은 수익이 당기순이익의 절반 이상에 달하고 시장 물량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을 근거로 부당 지원행위 성립 자체는 인정했다.
한화그룹의 ‘한익스프레스’ 부당지원 사건의 경우 정상 가격보다는 구조 자체가 문제로 지적됐다. 공정위는 당시 한화솔루션이 한익스프레스에 10년간 수출 컨테이너와 탱크로리 운송 등 일감을 몰아줬다고 보고 한화솔루션에 약 157억원, 한익스프레스에 약 7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화솔루션과 한익스프레스가 이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한화솔루션이 운송물량 100%를 운임이나 서비스 수준에 대한 다른 운송사업자와의 합리적인 비교·검토 없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한익스프레스에 제공했다는 점을 근거로 부당지원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진은 최근 판례를 종합해 정상 가격 산정 여부가 일감 몰아주기를 판단하는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연구진은 거래 구조와 물량 비중, 이익 규모, 계열사 의사결정 과정 등에서 경제상 이익이 명백히 드러난다면 위법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진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점차 가격 중심에서 ‘실질적 이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정상가격 산정이 어려워도 위법 판단 여부를 가릴 수 있어 공정위의 사건 처리 속도도 빨리질 것”이라고 봤다. 이어 “대기업집단 내부거래에 대한 판단 기준 역시 더욱 예측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이번 연구 결과를 향후 일감몰아주기 사건 처리에 적극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판례 분석과 법 위반 성립 요건에 대한 쟁점 검토 등 연구 결과를 즉각 일감몰아주기 사건 처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