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법,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03일, 오전 06:01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미국에서 지난해 7월18일 대통령 서명으로 제정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지급결제 목적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최초로 마련된 포괄적인 미국 연방법이다. 비록 법안의 실제 효력이 발생하는 시행일까지는 유예 기간이 존재하지만,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중 시장 지배력이 큰 USDC와 USDT의 현실적 지위를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려는 합리적 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만하다. 특히 제정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을 정의하면서 지급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용도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지급과 결제 수단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다. 법률에 따르면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이란 지불 또는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며, 발행자가 고정된 가치로 상환할 의무를 부담하는 디지털 자산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일정한 가치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코인만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화폐에 가까운 수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기존 법정화폐나 은행 예금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규율 체계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사진=챗GPT)
이 법의 핵심 골자는 발행 자격의 정의와 엄격한 준비금 요건에 있다. 미국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주체(Permitted Payment Stablecoin Issuer)는 ‘허가받은 지급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로 제한된다. 승인받지 않은 자가 임의로 발행하는 것은 금지된다. 지니어스법 제5조는 지급용 스테이블코인 발행 승인 제도를 규정한다. 그 승인 대상은 예금보험 가입 금융기관의 자회사, 연방 적격 발행자, 주 적격 발행자로 제한된다.

승인된 발행자는 발행한 스테이블코인과 1대1 비율로 준비금을 유지해야 한다. 그 준비금은 미국 달러, 예금성 자산, 잔존만기 또는 발행 시 만기가 93일 이하인 미국 국채, 그리고 법에서 정한 범위의 환매조건부거래(repo)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한정된다. 또한 준비금의 구성과 충분성에 대한 정기적 공시와 독립된 외부 회계검증이 요구된다.

아울러 준비금은 발행자의 일반 자산과 분리해 상환 전용 자산으로 관리되도록 설계돼 있다. 이를 통해 발행자가 도산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의 상환 청구가 발행자의 일반 채권자와 명확히 구분되도록 함으로써 이용자 보호를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자격에 관한 내용이다. 지니어스법은 ‘허가받은 지급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만 발행을 허용하면서도, 그 자격을 은행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연방 또는 주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고 준비금, 환매, 공시, 자금세탁방지, 이용자 보호 요건을 충족한다면 비은행 기관도 발행자가 될 수 있다. 법 어디에도 은행만 허용한다거나 은행이 51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을 특정 업권의 공신력에 귀속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투명한 운영 체계와 자산 분리라는 구조적 규율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미국 입법정책의 선택을 보여준다.

특히 준비금과 관련해 지니어스법은 미국 달러나 잔존만기가 93일 이하 또는 발행시 만기가 93일 이하인 단기 국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는 테더(USDT)가 과거 준비금 구성에서 비트코인 등 비현금성 자산을 일부 보유해 온 현실을 고려할 때, 이용자 보호를 위해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지니어스법은 준비금의 재담보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발행자가 준비금을 제3자에게 담보로 제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거나 다른 용도로 운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어떠한 시장 상황에서도 준비금이 오직 이용자의 상환만을 위해 온전히 보존되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실제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이러한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해 지니어스법의 요건을 충족하는 규제 준수형 스테이블코인을 별도로 추진하거나 준비금 구성을 전면 재편하는 등 제도권 편입을 위한 전략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발행 구조를 고수하기보다 엄격한 법적 가이드라인에 맞춘 상품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장기적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의 시장 신뢰와 가격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향후 준비금 자산의 범위 확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지니어스법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은행이 지분 51퍼센트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모델’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미국의 입법례가 보여주듯, 스테이블코인의 안전성과 신뢰는 발행 주체의 지분 구조가 아니라 준비금의 질과 투명성, 환매 가능성, 도산 시 이용자 권리 보호에서 나온다. 은행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혁신을 담보하기보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연장선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국내에는 토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은행보다 훨씬 혁신적인 결제 서비스를 구현해 온 기업들이 존재한다. 이들 기업이 은행의 지분 참여 없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라면 이는 경쟁력 있는 민간 혁신을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주도할 경우 발생할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비은행권 발행과 달리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예금과 대출이라는 기존의 신용 창출 경로와 결합되면서 중앙은행의 통화 조절 기능을 구조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의 충격이 은행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지분 51퍼센트를 통한 은행 주도권 확보는 리스크를 분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중시키는 정책적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지니어스법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누가 발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역시 특정 업권의 지분 비율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안정성과 민간의 경쟁적 혁신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것이 지니어스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전공 석사 △공인회계사세무사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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