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권력에 무릎 꿇으면 생기는 일[김학균의 투자레슨]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15일, 오전 05: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무역수지 적자 해결을 위해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외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할증관세 10%를 부과했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임금과 물가를 한시적으로 동결하는 초유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그는 동맹국들에 가혹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달러의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함에 따라 명실상부한 기축통화였던 달러 가치가 추락했고 이는 달러를 대외준비자산으로 비축했던 동맹국들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또한 한국에 주둔해 있던 주한미국 7사단을 전격적으로 철수했고 서독에 대해서도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전제로 재래식 전력 증강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떠안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자신의 최측근 인사를 연준 의장에 임명함으로써 그는 중앙은행을 정치에 복속시켰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승리한 연임 대통령이었으나 2기 집권기 때 야당에 대한 불법 도청과 이를 부인하는 과정에서의 위증 혐의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현재 백악관의 주인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떠오르는가. 앞서 서술한 장면들은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1969~1974년 재임)이 실제로 벌였던 일들이다. 닉슨은 여러모로 문제적 인물이었다. 중국과의 ‘핑퐁 외교’를 성사시키며 냉전 질서를 뒤흔든 외교적 수완을 과시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내부와 동맹국들 사이에 깊은 균열을 남겼고 그 결과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최악의 도덕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는 닉슨이 남긴 나쁜 유산 중 하나다. 최근 연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은 닉슨 집권기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법무부의 형사 조사는 그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연준 본부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비 증액 과정에서의 위증 혐의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금리 인하 속도에 불만을 품은 권력이 사법 기관을 동원해 중앙은행 수장의 목을 죄는 격이다. 벤 버냉키와 앨런 그린스펀 등 전직 연준 의장들은 물론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장관인 스콧 베선트까지 파월에 대한 수사에 반기를 들고 있다.

리사 쿡 연준 이사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스럽다. 과거 주택담보대출 과정에서의 거주 목적 허위 기재 의혹, 즉 ‘대출 사기’ 혐의를 부각하며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연준 내부의 반대파를 숙청하겠다는 신호다. 연방준비법상 보장된 이사의 임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도덕적 흠집 내기를 해임의 ‘정당한 사유’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스티븐 마이런의 연준 이사 선임이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직을 유지한 채 연준 이사직을 겸임하게 된 그의 행보는 연준의 110여 년 역사에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는 독립적인 통화정책 결정 기구에 대통령의 ‘직통 전화’를 설치한 것과 다름없다.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데이터가 아닌 백악관의 정무적 판단을 전달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연준의 의사결정 구조가 오염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 마이런은 지난해 8월 연준 이사에 선임된 이후 열린 세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줄곧 0.50%p의 금리 인하(빅컷)를 주장하며 소수 의견을 냈다.

닉슨 대통령이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아서 번스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1970년부터 8년간 연준의 의사봉을 잡은 번스는 연준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오명으로 남은 인물이다.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정치권력 앞에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미국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기나긴 암흑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번스의 비극은 닉슨 대통령과의 끈끈한 사적 관계에서 잉태했다. 닉슨의 선거 캠프와 행정부에서 경제 자문역을 맡았던 그는 1970년 연준 의장에 임명된 후 국가의 경제 수장이 아닌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처럼 행동했다. 1972년 재선을 앞둔 닉슨은 번스에게 “선거 승리를 위해 실업률을 낮춰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번스는 당시 이미 인플레이션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 돈을 푸는 확장적 통화정책을 감행했다.

그의 과오는 비단 금리 결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번스는 자신의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적 눈속임을 시도했다. 그는 물가 폭등의 원인을 과잉 유동성이 아닌 유가 급등이나 기상 이변 등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높게 나오자 변동성이 큰 석유와 식료품 등을 임의로 제외한 지표를 내세우며 ‘진짜 물가는 안정적’라고 주장했다. 이는 현실을 왜곡해 긴축을 회피하려는 꼼수였으며 결과적으로 연준이 적기에 대응할 기회를 날려버리게 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실책은 악명 높은 ‘스톱 앤드 고’(Stop-and-Go) 정책의 반복이었다. 번스는 비난이 거세지면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는 시늉을 하다가도 실업률이 조금만 오를 기미를 보이면 즉시 금리를 다시 내리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우유부단함은 시장에 “연준은 물가를 잡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확신을 심어줬고 경제 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고착화했다. 결국 번스가 닉슨의 압박에 굴복해 저지른 일련의 정책 실패는 197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힌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의 장기적 공존을 불러왔다. 번스는 중앙은행 총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을 때 국가 경제가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반면교사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1970년대 미국 증시는 줄곧 장기 횡보 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번스가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연평균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이 6.6%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70년대의 미국 주식은 구매력을 보전하지 못하면서 실질수익률이 큰 폭의 마이너스를 보였던 셈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시장은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시장의 반란은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가 상승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본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무조건’ 금리를 내리는 중앙은행의 편에 서기보다는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관리하는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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