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적 ‘글로벌 상호관세’ 조치를 위법으로 판단하며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이후 최대 법적 패배로, 그의 핵심 통상·경제 어젠다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자라는 행사에서 교역국에 부과하는 상호 관세 관련 판넬을 들고 있다.(사진=AFP)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권을 광범위하게 해석해 ‘상호관세’를 전면 도입하고, 펜타닐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일부 국가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조치의 법적 근거를 부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별 ‘상호관세’와 캐나다·중국·멕시코 일부 상품에 대해 25%를 부과한 관세는 무효가 됐다. 상호관세는 중국에 최대 34%, 기타 국가에 기본 10%를 적용하는 구조였다. 25% 관세는 해당 국가들이 펜타닐 유입을 충분히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과됐다.
다만 이번 결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관세를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다른 법률을 근거로 부과한 관세는 유지된다.
다수 의견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동참했다. 브렛 캐버노,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의회가 관세 부과 권한을 위임할 때는 명확하고 신중한 제약을 둔다”며 “IEEPA에는 관세나 세금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IEEPA는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IEEPA는 국가 안보·외교 정책·경제적 비상사태에 대응해 대통령이 수출입을 ‘규제(regulate)’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관세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트럼프 이전에는 어떤 대통령도 해당 법을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없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전략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그는 최근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들의 상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하는 절차를 마련했으며,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세 위협도 언급한 바 있다. 법원의 판단으로 이러한 ‘다목적 압박 수단’은 상당 부분 제약을 받게 됐다.
다만 대법원은 이미 징수된 관세에 대한 환급 범위는 직접 판단하지 않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캐버노 대법관은 환급 절차가 “구두변론에서도 인정됐듯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수입업자들이 환급을 받을 경우 규모는 최대 17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IEEPA 기반 관세 수입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 기준 IEEPA에 따른 관세로 약 1300억달러가 걷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합의 효과까지 포함하면 3조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해왔다.
백악관은 즉각 다른 법적 수단을 활용해 관세를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체 가능한 법률은 절차가 복잡하거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IEEPA 아래에서 주장한 광범위한 재량권에 비해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 반응은 엇갈렸다. 관세 부담 완화 기대에 뉴욕증시는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관세가 기업 실적과 경제 성장 전망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반면 세수 감소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미 국채 가격은 하락(금리 상승)했고, 달러화도 약세를 보였다. 해외 경제에 대한 압박 완화 기대가 달러 수요를 낮춘 영향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사안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결론 날 경우 미국 평균 실효관세율이 13.6%에서 6.5%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이후 보지 못한 수준이다.
이번 사건은 헌법상 관세 부과 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연방대법원은 앞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중대 사안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근거로 제동을 건 바 있다. 행정부가 전국적 파급 효과를 갖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셈이다.
향후 하급심에서 환급 범위와 절차가 구체화되면 재정·통상 정책 전반에 추가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관세 조치에 대해 와인·주류 수입업체 V.O.S. 셀렉션스, 배관 자재 업체 플라스틱 서비스 앤 프로덕츠, 교육용 장난감 판매업체 등 여러 기업과 오리건주를 중심으로 한 주 정부 연합이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법원은 모두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판단을 내렸고, 양측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