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역이 직접 코드짠다"…AI 실험에 빠진 카카오벤처스[마켓인]

경제

이데일리,

2026년 2월 27일, 오전 04:37

[이데일리 마켓in 송승현 기자] 국내 대표 벤처캐피탈(VC) 중 하나인 카카오벤처스가 심사역들이 직접 코드를 짜는 등 인공지능(AI) 활용에 몰두하고 있다. 투자 대상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코딩 도구를 손수 다루며 실제 서비스를 만드는 '바이브 코딩' 실험에 뛰어든 것이다. AI의 발달이 VC 업계 풍경을 바꾸고 있다.

카카오벤처스 소속 직원들이 '바이브코딩' 부트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카카오벤처스 제공)


26일 VC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벤처스는 지난해부터 투자팀 장동욱 이사 주도로 사내 바이브코딩 부트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비개발자 심사역과 사내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자연어 명령만으로 AI가 코드를 생성하는 바이브코딩은 별도의 프로그래밍 지식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개발자와 비개발자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는 트렌드다.

이같은 카카오벤처스의 모습은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AI가 바꾸는 서비스·제품 개발 공정을 투자자 스스로 체감하기 위한 시도다. AI 에이전트의 발달로 첫 사용자에게 내놓기까지 걸리는 리드타임(MVP 개발 기간)이 수개월에서 수일로 단축되고 있다. 아울러 '1인 유니콘'이 거론될 만큼 개발 장벽이 낮아진 시대에, 투자자가 그 변화를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창업자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조현익 선임 심사역은 여러 시스템에 분산돼 있던 LP(유한책임출자자) 및 포트폴리오 관리 데이터를 통합한 사내 전용 커스텀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했다. 베타 버전 기준으로 불과 이틀 걸렸다. 별도 외주 개발이나 상용 솔루션 도입 없이, 자신의 업무에 최적화된 도구를 심사역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실험은 업무를 넘어 일상으로도 번졌다. 육아 기록지, 동네 빵집 지도, 말하기 연습 애플리케이션(앱) 등 생활 속 불편을 AI 코딩으로 직접 해결하며 '능동적 문제 해결자'로서의 조직 정체성을 다져가고 있다.

투자 현장의 변화도 뚜렷하다. 카카오벤처스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게되네'라는 이름의 오피스아워를 운영 중이다. 발표 자료(덱) 없이 실제로 작동하는 데모만으로 투자사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현재까지 약 40팀이 이 문을 두드렸다. AI 개발 도구의 확산으로 누구나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게 된 시대에, 완성도 높은 덱보다 '진짜 프로덕트'의 가치를 직접 보겠다는 취지다.

매주 수요일 아침 8시에는 전 세계 AI 서비스 트렌드를 수집·요약해 사내 슬랙으로 공유하는 자체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앱스토어와 프로덕트헌트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정리한 내용을 서비스 투자팀이 함께 보며 'AI 서비스의 결'을 읽는 안목을 조직 차원에서 키우고 있다.

이 모든 실험의 바탕에는 투자 철학의 전환이 있다. 과거 심사 기준이 '얼마나 많은 개발 인력을 보유했는가'였다면, 이제는 'AI를 레버리지 삼아 얼마나 기민하게 시장에 대응하는가'가 핵심 지표로 자리잡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쟁력 자체가 재정의되는 시대에, 투자자도 그 언어를 직접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카카오벤처스의 판단이다.

카카오벤처스 관계자는 "개발이 쉽다고 말하기 위한 실험이 아니다"라며 "심사역이 직접 코딩의 고통과 희열을 겪어봐야 AI 시대 창업자들이 마주한 기회와 한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진짜 혁신인지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 장동욱 이사가 직접 앱 스토어에 배포한 '달빛기록'. (사진=카카오벤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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