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관광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한 조건

경제

이데일리,

2026년 3월 05일, 오전 01:25

김기헌 교수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격세지감 속 되새기는 관광의 본질

30년 전 저개발국 관광 공무원을 대상 한 달 일정의 하와이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배움을 얻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우리가 이제 각국 공무원과 학생을 초청해 행정과 산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와이키키 해변 인근에 머무르며 세계 최고의 관광지를 누비던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화려한 호텔도 면세점도 아니었다. 바로 하와이 주정부가 배포하는 단 한 장짜리 리플릿이었다. 그 속에는 관광이 주민 삶에 어떻게 기여하는지가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관광객 한 명이 오면 달걀 몇 알이 더 팔리고, 우리 동네에 몇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리플릿은 관광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지갑과 연결된 경제 활동임을 설득하고 있었다. 동시에 하와이를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실천해야 할 핵심 가치로 ‘친절·질서·청결’을 제시하며 주민 모두가 관광 요원이 되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관광 산업이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그들의 철학은 당시 사치와 향락이라는 오명에 발목 잡혀 성장 정체기에 있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장에 뿌린 ‘관광 전도사’ 씨앗

귀국 후엔 그 영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관광이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닌 국가의 품격이자 미래 먹거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급선무였다. 교육부를 찾아가 사회 교과서에 관광 산업의 중요성을 수록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교육청을 설득해 고등학교 간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 시민의식과 관광의 중요성을 강의했다.

국내 여행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유홍준 교수와 ‘배움이 있는 수학여행’ 모델을 만든 기억도 생생하다. 80여 명 교사들과 공주, 부여를 답사하며 아이들에게 여행이 인생의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수능 직후 학사 운영이 느슨해진 고3 교실을 찾아가 매년 5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여행문화 특강을 한 것은 미래 세대가 건강한 여행자이자 친절한 호스트로 자라주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비록 공직사회 문턱을 넘으며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친절한 손님맞이가 한국 관광의 체질을 바꿀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시간이 흐르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난 듯 보인다.

◇‘환대’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

최근 있었던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관광 종사자뿐 아니라 온 국민의 ‘친절과 질서’를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의 공통점은 정책보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과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의 관광 안내원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관광객은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 할지라도 바가지요금, 불친절한 서비스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안티 홍보대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작은 미소와 친절로 손님을 맞이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관광객이 기분 좋게 연 지갑은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고 내수 경제를 살린다. 인구 소멸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도 된다.

◇살기 좋은 도시가 곧 관광하기 좋은 도시

서로 배려하며 미소 짓고,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며 낯선 이를 친절하게 맞이하는 곳은 주민부터가 행복하다. 주민이 행복한 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결국 ‘관광하기 좋은 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와 동의어인 셈이다.

이제 관광을 특정 업종 종사자만의 전유물로 봐선 안 된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건네는 환한 미소, 친절한 인사 한마디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 1순위 여행지로 만드는 시작점이다. 전 국민의 미소가 관광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때 대한민국은 진정 ‘관광으로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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