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거리에서 택배 기사들이 배달을 하고 있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 교섭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플랫폼 노동자들도 원청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2026.3.9 © 뉴스1 최지환 기자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10일 시행되면서 산업 현장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청 노동자도 자신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되는 등 노사관계 구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법 개정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교섭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동안 간접고용 구조에서 교섭 상대가 제한돼 있었던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넓히고,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위축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노조 활동의 제약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경영계에서는 경영상 판단까지 노사 갈등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고 불법 파업에 대한 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시행 초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 3개월을 '집중 점검 기간'으로 운영하며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원청 사용자 책임 확대…하청 노조도 원청과 교섭 가능해졌다
법 시행으로 가장 큰 변화는 '사용자 범위'의 확장이다. 기존에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를 통상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법적으로는 하청업체가 사용자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개정법 시행 이후에는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라면 직접 고용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청과 하청 구조다.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에는 이같은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담겼다. 노동부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단위가 서로 다르다고 해석했다. 교섭권의 범위와 사용자의 책임 범위, 근로조건 결정 방식 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이후 원청 기업은 기존처럼 자사 노조와의 교섭뿐 아니라 하청 노동자 노조와도 별도의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교섭 요구가 있을 경우 원청 사용자는 이를 다른 하청 노조와 노동자에게 공고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파업 손해배상 제한…노동자 개인 책임 기준도 명확화
쟁의행위와 관련된 손해배상 책임 규정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불법 쟁의행위로 판단될 경우 기업이 노조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가 이어지면서 노조 활동이 위축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개정법은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쟁의행위와 관련해 노동자 개인에게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제한된다. 또 책임을 묻더라도 노동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 여부, 실제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과도한 손해배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경영계는 불법 파업에 대한 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노동쟁의 범위 확대…구조조정도 쟁의 대상 될 수도
노동쟁의 범위 역시 일부 확대된다. 기존에는 노동쟁의 대상이 주로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개정법에서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이라면 쟁의 대상이 될 여지가 커졌다. 예컨대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등 기업의 경영상 결정이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가 이를 교섭 의제로 삼거나 쟁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계는 이를 노조의 교섭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로 평가하는 반면 경영계는 기업의 경영 판단까지 노사 갈등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 교섭 요구 준비…경영계 "무리한 요구 자제"
법 시행을 앞두고 노사 양측의 대응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노동계는 원청 교섭 확대를 계기로 현장 교섭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법 시행과 동시에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등 약 14만명의 간접고용 노동자가 속한 8개 산별노조는 이미 교섭 요구 공고를 냈거나 법 시행 직후 발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을 요구하고 교섭에 응하지 않는 원청에 대해서는 결의대회와 총파업 등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노란봉투법 시행을 맞아 현장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원청 교섭을 준비하는 하청 노조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영계 역시 대응에 나섰다. 주요 기업들은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늘어날 상황에 대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노무법인 등과 협력해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총은 "노동계는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의 무리한 요구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며 "정부와 중노위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노 갈등 가능성도…정부 "3개월 집중 점검"
현장에서는 노조 간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청 노조의 교섭력이 강화될 경우 원청 정규직 노조의 교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하청 노조 교섭 확대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는 공사가 '노란봉투법 시범사업장'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한전KPS에서도 원·하청 노조 간 갈등이 표출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법 시행 이후 첫 3개월을 집중 점검 기간으로 운영하며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성 관련 질의 창구를 운영하고 원·하청 교섭 준비를 지원하는 컨설팅도 추진할 예정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으로 갈등의 악순환이 끊어지고, 원·하청 노사간 대화의 제도화로 신뢰가 회복된다면 '지속가능한 진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정부도 일관된 원칙과 지원으로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노사관계에서의 신뢰자산이 형성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현장 안착을 위한 공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2.27 © 뉴스1 임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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