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가 최근 서울 은평구 남해공예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며 옻칠 과정을 선보이고 있다.(사진=이영훈기자)
나전칠기 명장인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78). 그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자개장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같이 말했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자개장은 무리해서라도 구매하고 싶은 가구이자 어깨를 세워주는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귀빈 대접용 나전칠기 작품…수차례 옻칠작업으로 고급화
최 대표는 최근 서울 은평구 남해공예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문화가 되면서 붙박이 가구가 들어왔다. 이제는 추가적인 가구를 놓을 곳이 없다”며 “요즘은 집으로 놀러 오는 문화도 많이 없어졌다. 약속도 카페나 식당 등 밖에서 많이 잡으니 집에 초대해서 자개장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졌다”며 달라진 위상을 전했다. 과시의 수단이 가구에서 차량, 가방 등으로 옮겨가며 자개장을 찾는 수요가 많이 줄었다는 뜻이다.
대신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작품’으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최 대표는 “요즘은 국가적으로 귀한 외국인 손님을 대접할 때 나전칠기 작품을 많이 선물한다”며 “한국을 영원히 기억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고급화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전칠기는 나무나 물건 표면에 자개(조개껍질)를 붙이고 옻칠을 해서 만드는 전통 공예 기법으로 자개로 장식된 가구인 ‘자개장’은 나전칠기 기법을 적용해 만든다. 이 기법은 수십 번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될 만큼 매우 까다롭다.
최 대표는 가구의 기본이 되는 목재를 받으면, 먼저 정제하지 않은 옻 원액(생칠)을 발라 나무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후 나무가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삼베를 덧댄 뒤 찹쌀풀과 옻을 섞어 바르고 말린다. 그 위에 고운 흙과 옻을 섞어 삼베의 틈을 메우고, 다시 옻을 바르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거친 표면은 사포로 갈아 매끈하게 다듬는다. 이렇게 준비된 바탕 위에 자개를 하나씩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반복한다. 이후 자개 위에 덮인 옻만 살짝 걷어내 자개의 무늬가 드러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옻칠을 많이 할수록 자개는 더 얕아지고, 배경은 더 두툼해진다. 이로 인해 무늬와 배경의 높이 차이가 생기는데 이 차이가 클수록 작품의 완성도와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시대에 맞게 작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 대표는 과거에 3번 하던 옻칠을 지금은 7번이나 한다.
◇손재주 좋았던 남해의 꼬마…먹고 살기 위해 공예업 뛰어들다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가 옻칠을 막 끝낸 나전칠기 공예품을 손에 들고 있다.(사진=이영훈기자)
최 대표는 어렸을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그는 “산에서 나무를 해와도 동네 사람들이 내가 베어온 나무를 좋아했다”며 “다른 사람들의 나무는 헝클어져 있는데 내가 한 건 반듯하고 예뻤다”고 했다.
이런 최 대표의 손재주를 알아주는 고객들은 수십년간 남해공예사의 단골이 됐다. 인터뷰 당일 남해공예사 입구를 차지하고 있던 오래된 자개장 문짝들도 35년 전부터 최 대표를 찾았던 고객의 리폼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 사는 자녀에게 주고 싶다고 자개장을 병풍으로 리폼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며 “이처럼 부분적으로 액자나 병풍으로 리폼하는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리폼 외에도 고급 일식집, 한옥의 대문 등을 나전칠기 공예품으로 채우려는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는 게 최 대표 설명이다.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 고객들에게도 우리나라 공예 작품은 관심 대상이다. 최 대표는 “K팝을 넘어 K공예를 알려야 한다”며 지금이 우리나라 공예 작품들을 세계에 알릴 적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나전칠기 체험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나전칠기 작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도 준비 중이다.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 약력
△1948년 경남 남해 출생 △1986년 남해공예사 설립 △2004년 문화재 수리 기능사 자격 취득 △2017년 대한민국명장 선정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백년소공인 선정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가 한 땀 한 땀 붙인 자개를 손에 들고 있다.(사진=이영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