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낮을수록 싼 '거꾸로 금리'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전 06:35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포용금융 확대 기조 속에 저신용자의 대출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낮아지는 이른바 ‘금리 역전’ 현상이 금융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취약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금융시장에서는 “위험이 큰 차주일수록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한다”는 금융의 기본 가격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신용점수별 대출금리 추이
◇저신용자 금리 내리고 고신용자는 상승…시장금리 흐름과 반대

17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3월 기준 최저신용자(신용점수 600점 이하) 신규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8.376%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1월 대비 약 0.51%포인트 하락한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최고신용자(951~1000점)의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오히려 0.124%포인트 상승한 연 4.5%를 기록했다. 통상 시장금리가 상승할 경우 저신용자 금리가 더 빠르게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반대 흐름이 나타난 셈이다.

은행별 편차도 뚜렷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600점 이하 차주 신용대출 금리가 올해 1월 연 12.11%에서 3월 7.25%로 4%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최고신용자 금리는 4.52%에서 4.67%로 상승했다. 정책성 상품 확대와 저신용자 지원 강화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에서는 금리 역전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5대 은행의 저신용자(651~700점) 신규 마이너스대출 평균금리는 지난 1월 연 5.65%에서 3월 5.492%로 하락했다. 반면 최고신용자 평균금리는 같은 기간 4.676%에서 4.756%로 상승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저신용자의 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더 낮아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3월 기준 최저신용자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연 3.73%로 최고신용자(4.86%)보다 1.13%포인트 낮았다. 올해 1월에도 최고신용자 금리(4.76%)보다 0.97%포인트 낮았는데, 두 달 사이 역전 폭이 더 확대된 것이다. 경기도 협약 상품이 반영된 결과지만, 정책성 금융상품이 일반적인 위험 가격 체계를 뒤집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은행 역시 일부 저신용 구간 금리가 최고신용자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기준 우리은행의 최고신용자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연 4.88%였지만, 650~601점 구간 금리는 4.94% 수준에 머물렀다. NH농협은행 역시 최고신용자 금리(4.74%)와 600점 이하 금리(4.85%) 차이가 사실상 사라진 모습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의 포용금융 확대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중·저신용자에 대한 포용금융을 얼마나 실현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역시 신용등급을 두고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표현하며 신용평가 체계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빚투·마통 증가 속 “위험가격 기능 왜곡” 우려 커져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금융시장의 가격 기능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금융시장에서 금리는 차주의 상환 능력과 부실 위험을 반영하는 핵심 가격이다. 위험이 큰 차주일수록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구조를 통해 금융회사는 손실 가능성을 관리한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저신용자 금리를 낮추거나 금리 상단을 제한할 경우 이러한 위험 가격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증시 과열 흐름과 맞물리며 금융권 안팎의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증권사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5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약 8조4000억원 증가했고,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며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저신용자 중심의 금리 인하 기조가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 수요와 맞물릴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 금융지주사들도 최근 해외 투자자들에게 이 같은 우려를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KB·신한·우리금융지주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서 정부의 포용금융 확대 정책이 연체율 상승과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공시는 투자자 소송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잠재 리스크를 폭넓게 기재하는 특성이 있는데, 국내 금융지주들이 포용금융 확대를 위험요인으로 명시한 것이다.

건전성 지표 역시 악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말 연체율 평균은 0.40%로 지난해 말보다 상승했다. 정책서민금융 상품인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의 경우 올해 3월 말 기준 연체율이 39.4%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취약계층 지원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원리와 괴리된 금리 체계가 고착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성실하게 신용을 관리한 차주까지 역차별받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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