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파생상품 다 막혀…자금 빨아들이는 해외 DEX에 속수무책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21일, 오전 06:51

[이데일리 서민지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가 규제에 묶여 코인마켓 중심 사업에 머무는 사이 해외 탈중앙화 거래소(DEX)들은 무기한 선물과 각종 파생상품, 예측시장까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내 자금이 규제 밖 해외 거래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해 시장 주도권과 유동성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디지털자산 분석업체 아르테미스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간 디파이 브리지를 통한 체인별 순자금 유입 규모가 가장 컸던 블록체인은 하이퍼리퀴드였다. 하이퍼리퀴드는 탈중앙화 파생상품 거래소를 운영하는 대표 플랫폼으로,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1억4779만달러(원화 약 2229억원)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자금 유입 배경으로는 온체인 파생상품 거래 확대가 꼽힌다. 하이퍼리퀴드는 24시간 365일 거래가 가능한 코인 시장의 무기한 선물 구조를 전통 주식과 원자재 시장으로 확장하며 글로벌 투자자 자금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무기한 선물은 만기 없이 레버리지 거래를 할 수 있어 가격 변동에 대한 헤지와 공격적인 투자 전략이 모두 가능한 상품이다.

최윤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금융권에서는 규제, 계좌 개설, 거래 시간 등 다양한 제약으로 접근 과정에 마찰이 존재했지만, 스테이블코인 기반 정산과 온체인 파생상품 구조를 통해 이러한 제약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며 “하이퍼리퀴드에서는 원유, 금 등 원자재뿐 아니라 개별 주식 기반 시장까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주일 간 디파이(DeFi) 브리지 체인별 자금 유입 현황 (그래픽=아르테미스)
중앙화거래소(CEX)와 전통 금융권은 24시간 무기한 선물을 제공하기 위해선 수년 간에 걸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면 하이퍼리퀴드는 이미 별도 등록 없이 무기한 선물, 현물, 예측시장을 단일 계정에서 통합 운영하는 ‘모든 것을 거래하는 거래소(Everything Exchange)’ 모델을 구축했다. 현물, 파생상품, 예측시장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CEX 의존도를 낮추려는 트레이더 자금이 빠르게 몰리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하이퍼리퀴드의 명목 거래량은 2조6000억달러로, 미국 최대 디지털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1조4000억달러)에 비해서도 약 두 배에 달했다. 앤서니 아르테미스 데이터 애널리스트는 “하이퍼리퀴드가 코인베이스보다 더 많은 명목 거래량을 처리하고 있다”며 “펀더멘털이 차트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글로벌 CEX들도 DEX에 대응해 사업영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인베이스는 지난해 8월 파생상품 거래소 데리비트(Deribit)를 인수했으며, 이를 활용해 지난해 미국 최초로 무기한 선물을 출시했다. 급성장하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평가된다.

반면 국내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상 기초자산 정의에 가상자산을 포함하지 않다는 이유로 디지털자산 선물 상품 제공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위험 헤지와 고도화된 파생 거래를 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바이낸스나 코인베이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는 국내 규제의 직접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한국 투자자들이 VPN, 해외 앱, 해외 계정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실제 금융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하반기에만 90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외 사업자와 개인 지갑(화이트리스트)으로 빠져나갔다. 직전 6개월 간에 비해 14% 증가한 수치로, 사실상 자금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국내 거래소는 규제에 갇히고 해외 사업자는 규제 밖에서 시장을 흡수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이용자 보호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디지털자산 업계에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지지부진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사업자 영업 행위를 규율하고 무기한 선물·파생상품·예측시장 등을 제도권으로 편입해야 국부 유출을 막고 글로벌 금융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지성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이 사실상 전면 차단돼 있지만 정책적 판단과 규제 정비를 시작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은 현물과 선물 간 차익거래를 통해 가격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자에게는 변동성 대응을 위한 리스크 헤지 수단을 제공한다”며 “현재 해외 거래소로 집중되고 있는 파생상품 수요를 국내로 환류시켜 국내 시장의 유동성과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