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자립 전략이 연산칩을 넘어 메모리까지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로 엔비디아 의존이 어려워진 가운데 중국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은 AI 인프라 핵심 부품을 내부에서 조달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중국 반도체 자립의 초점이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파운드리 생산능력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고성능 AI 서버를 구성하는 메모리와 패키징, 서버 시스템까지 전장이 넓어지고 있다.
중국 DRAM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IC China에서 차세대 메모리 제품군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CXMT)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는 지난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 과창반 상장심사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예정 조달 규모는 295억위안(6조5669억원)이다. 공모 자금은 D램 기술 업그레이드와 메모리 웨이퍼 생산라인 고도화, 차세대 D램 연구개발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상장이 마무리되면 중국 본토 자본시장은 AI칩과 로봇에 이어 메모리까지 전략 기술주 영역으로 끌어안게 된다.
CXMT의 실적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19.13% 늘어난 508억위안(11조 3080억원)을 기록했으며, 상반기 매출 전망은 최대 1200억위안(25조 7204억원)으로 제시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 154억위안(3조 4295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7배 안팎으로 몸집이 커지는 셈이다.
이 같은 급성장의 배경에는 D램 시장의 달라진 수급 환경이 있다. AI 서버 투자가 몰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의 생산능력은 HBM과 고성능 서버용 D램으로 쏠렸다. 이 여파로 PC와 모바일, 일반 서버에 쓰이는 범용 D램 공급도 빠듯해졌고 가격도 오른 것이다. 최첨단 HBM에서는 아직 선두 업체와 격차가 크지만, 중국 내 서버와 PC, 모바일 수요를 기반으로 한 CXMT에는 이 흐름이 성장의 발판이 됐다.
점유율에서도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CXMT는 지난해 4분기 D램 매출 기준 글로벌 점유율 7.67%를 기록하며 세계 4위권에 진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3강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다만 중국 업체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이 AI 인프라를 자체 구축하려면 연산칩뿐 아니라 메모리 공급망도 함께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 역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 20일 자체 AI칩 ‘젠우 M890’을 공개했다.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핑터우거가 개발한 이 칩은 전작보다 성능을 3배 끌어올린 제품으로, 여러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AI 업무에 맞춰 설계됐다. 알리바바는 후속 제품 로드맵도 함께 제시했으며, 향후 3년 동안 클라우드와 AI 인프라에 무려 3800억위안(84조62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알리바바의 목표는 엔비디아 칩 일부를 대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젠우 M890과 함께 AI 가속기 128개를 하나의 랙에 묶은 서버 시스템 ‘판주 AL128’도 공개했다. 자체 AI칩을 서버와 클라우드, 대규모언어모델(LLM)까지 연결해 중국 기업 고객에게 통째로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기업들이 AI칩 직접 개발을 넘어 실제 서비스에 필요한 서버 인프라까지 내부에서 확보하려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AI 인프라가 연산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GPU가 아무리 빨라도 데이터를 제때 읽고 옮기지 못하면 학습과 추론 속도는 떨어진다. D램과 HBM이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이유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지난해 말 HBM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메모리는 더 이상 단순 부품이 아니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전략 품목이 됐다. 중국이 AI칩과 함께 D램, HBM, 패키징까지 키우려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물론 중국의 메모리 자립이 곧바로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HBM은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만으로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수율과 패키징 기술, 고객사 인증, 장기 공급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 글로벌 고객사가 요구하는 안정성과 품질 기준을 충족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중국의 변화는 이미 자국 내 수요에서 나타나고 있다. CXMT가 범용 D램에서 실적과 점유율을 키우고, 알리바바와 화웨이 등 빅테크가 자체 AI칩과 서버 시스템을 확대하면 중국 내 AI 인프라 수요는 점차 자국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연산칩과 메모리, 서버를 함께 키우는 흐름은 한국 메모리 산업에도 중장기 변수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