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2022.8.15 © 뉴스1 유승관 기자
금융당국이 채권형 랩어카운트 상품을 운용하면서 기업어음(CP)·채권을 시장 금리 대비 높은 가격에 매입하거나 만기미스매칭 전략을 실행해 고객에게 손해를 입힌 증권사에 손해액의 60~7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자본시장법상 투자일임업자의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최초의 조정결정이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 29일 회의를 열고 A 증권사의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을 인정해 이같이 결정했다.
A 증권이 부담할 배상액은 신청인 B사에 12억 6000만 원(배상비율 70%), 신청인 C사에 3억 9000만 원(60%) 등 총 16억 5000만 원 규모다.
채권형 랩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1:1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으로 법인고객의 단기자금 운용수단으로 선호된다. 지난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시중금리 급등으로 채권·CP 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채권형 랩 상품에서도 투자손실이 발생했고, 지금까지도 고객과 증권사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증권사의 자본시장법상 선관주의·충실의무를 위반한 채권운용 행위에 대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목표수익률 미달금액의 70%)을 인정한 1심 판결을 참고하고 증권사 검사 결과 등을 고려해 배상기준을 마련했다.
B사는 지난 2023년 3월 A 증권에 총 800억 원을 위탁했다. 하지만 A 증권은 계약 만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잔존만기가 10개월이나 남은 장기 채권을 편입하는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썼다. 이후 금리 급등으로 제값에 매도가 불가능해지자 A 증권은 운용역의 위법 행위를 이유로 환매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B사는 한 달이 지나서야 자금을 돌려받았으나 4억 6000만 원의 원금 손실을 입었다.
또 다른 피해자인 C사 역시 2023년 4월과 5월에 걸쳐 총 150억 원을 위탁했지만, 가입 후 두 달 만에 약 4억 5000만 원의 평가손실을 통보받았다. C사가 직접 거래내역을 확인한 결과, A 증권이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CP를 사들이는 '고가 매수'와 만기 미스매칭 운용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C사는 즉시 운용 중단을 지시했으나, 자금이 그대로 묶여 편입된 CP의 만기인 2024년 봄이 돼서야 자금을 상환받았다.
금감원 검사 결과 A 증권이 시장가보다 비싸게 채권을 매수한 동기 중 상당수는 다른 고객의 목표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한 목적(제3자 이익도모)으로 밝혀졌다.
분조위는 A 증권의 '채권·CP 고가매수' 및 '만기미스매칭 운용' 행위가 자본시장법 제96조에 규정된 선관주의 및 충실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과거 유사한 불건전 영업행위로 제재를 받았음에도 재발 방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투자자의 재산을 위법하게 운용할 경우 행정상의 제재뿐만 아니라 민사상의 책임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2월 채권형 랩·신탁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9개 증권사에 기관경고 등의 제재와 총 289억 7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이번 분조위 조정안은 신청인들과 A 증권이 조정안을 제시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수락할 경우 성립된다. 조정이 성립되면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jupy@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