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자력 이끈 거목…이창건 前원자력문화진흥원장 별세

경제

뉴스1,

2026년 7월 08일, 오후 12:38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 원장이 지난 2017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원자력의 과거와 미래 특강에서 강연하는 모습.© 뉴스1 안은나 기자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태동부터 기술 자립까지 60년 동안 헌신한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지난 6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193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1947년 가족과 함께 서울에 자리 잡았다.

1949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업이 중단됐다.

전쟁 중에는 미군이 북한 정보 수집과 게릴라전을 위해 이북 출신 청년을 모아 만든 비정규 부대 켈로(KLO)에서 활동했다.

원자력과의 인연은 1953년 시작됐다. 고인은 '뉴클리어 스터디 그룹'에서 활동하며 원자력법 제정과 원자력연구소 설립의 주역이 됐다.

이후 이승만 정부의 원자력 인재 양성 정책에 따라 시행된 1인당 6000달러의 국비 해외 유학프로그램에 참여해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산하 국제 원자력 학교에서 수학했다.

당시 한국 첫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가 한국에 들여올 예정이었는데, 이를 운전할 사람이 없었다.

이 원장은 귀국 전 운전 훈련을 받으라는 긴급훈령을 받고 시험에 몰두, 면허 획득에 성공했다.

1962년 가동을 시작한 트리가 마크-2는 수백 명의 원자력 전문가를 길러내며 한국 원전 기술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고인은 생전에 당시를 회고하며 "한 명의 1급 원자력 기술자를 양성하는 데 드는 교육훈련비는 그 사람의 몸무게에 버금가는 금값이었다"며 "내 몸을 태워 겨울철에도 '금 선생'들이 일할 수 있도록 온기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타오를 때 발산하는 빛으로 금 선생들이 밤에도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불사르며 일했다"고 했다.

그의 노력으로 1969년에는 세계 최초로 이 원자로의 출력을 100㎾에서 250㎾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첫 원전 부지를 찾는 일을 맡아, 지질, 용수 등 최적 입지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그 결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를 찾았고, 고리 1호기가 1978년 상업 운전에 들어가 한국은 세계 21번째 '원자력 발전국'이 됐다.

이후에도 고인은 한국원자력학회장,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집행위원장, 원자력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한국 원전 생태계를 길러왔다.

발전소 설계부터 건설, 운전, 폐로까지 아우르는 국내 원전 산업 전주기 표준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한국이 자체 개발한 첫 소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 고도화에도 기여해 원전 기술 자립을 도왔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201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됐고, 홍조근정훈장, 3·1문화상도 받았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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