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신평사 모두 투자등급서 부도
5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기업평가(034950)(한기평)와 한국신용평가(한신평), NICE신용평가(나신평) 등 국내 신용평가 3사 모두 투자등급(BBB급 이상)에서 부도가 발생했다. 신용평가사별 투자등급 부도 건수는 한기평 3건, 한신평 2건, 나신평 2건이다.
같은 기간 투기등급(BB급 이하) 부도는 한기평과 한신평에서 각각 0건에 그쳤다. 나신평에서도 1건(다원시스)에 불과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4년간 투기등급 위주로 부도가 발생했던 흐름과는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부도 등급은 부도 발생 시점이 아닌 직전 사업연도 말 기준 신용등급 기준이다.
이 같은 ‘부도율 역전’은 신용등급 자체에 대한 짙은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투자등급 끝자락의 기업들이 사전 징후나 순차적 등급 강등 없이 갑작스레 부실화되면서 시장이 체감하는 충격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통상 신용등급은 재무 상태 악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하락해 투자자들에게 부도 위험을 가늠할 시간을 준다. 올해와 같은 ‘기습 부도’가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 악화에 대한 공포감을 키우는 한편 비우량채 시장의 ‘깜깜이 리스크’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투기급 리스크도 판단 불가
투기등급 부도율이 ‘0’을 기록했다는 수치도 시장에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신용등급이 부도 위험을 앞서 알리는 신호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자리 잡은 이상 낮은 부도율 역시 위험이 줄었다는 근거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은 부실이 시차를 두고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경계감이 짙어지고 있다.
이는 비우량채 금리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4일 기준 회사채 3년물 BBB- 등급 금리는 연 10.23%로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BBB 등급과 BBB+ 등급 금리도 각각 연 8.86%, 7.80%를 기록 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달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크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10% 안팎의 고금리로 부도 위험(리스크 프리미엄)을 온전히 보상받을 수 없다는 회의론이 팽배해 매수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투자등급 부도 건수가 투기등급을 넘어서는 것은 매우 흔치 않은 일”이라며 “투자등급마저 무너지는 상황에서 투자자들로선 투기등급의 리스크를 전혀 판단할 수 없어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채 시장 전반이 위축된 가운데 발생한 투자등급의 부도는 비우량채 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이는 결국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악화시키고 부도 위험을 더 키우는 악순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진·동화기업도 미매각"…비우량채 회복 당분간 어려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채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는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비우량채까지 훈풍이 확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질적인 부도 위험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한 비우량채에 대한 기피 현상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최근 한진과 동화기업의 수요예측 미매각 사례만 보더라도 비우량채를 향한 싸늘한 투심을 잘 알 수 있다”며 “비우량 등급인 만큼 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매력적인 금리를 제시해야 하지만, 최근 주식시장 변동성에 따른 기대 수익을 고려하면 현재 수준으로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채 시장은 한 번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여파가 꽤 오랫동안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며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에 이어 최근 크레딧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우량 회사채 시장의 회복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