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대체 왜 저 모양인가 [아車차]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2일, 오전 11:02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그 똑똑하다는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왜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할까요. 몸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지만 꼭 그래야만 했을까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자동차의 호불호 포인트, 그 이유를 파헤쳐 봅니다. <편집자주>

페라리의 순수전기차 '루체'를 진공청소기와 합성한 이미지 (사진=레딧 캡처)
페라리의 순수전기차 '루체'를 진공청소기와 합성한 이미지 (사진=레딧 캡처)
페라리의 첫 순수전기차 ‘루체’를 보고 있자니 자동차 전시장보다 가전제품 매장이 먼저 떠올랐다. 길쭉하고 매끈한 차체, 둥글게 다듬은 모서리, 검은색 패널로 둘러싼 앞모습. 바퀴를 떼어내고 손잡이만 달면 영락없이 거실 한쪽에 세워둔 진공청소기다.

루체의 디자인이 처음 공개되자 전 세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페라리 특유의 날렵하고 관능적인 자태는 온데간데없고, 슈퍼카 회사가 난데없이 거대한 가전제품을 내놨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사실 이런 굴욕을 당한 것은 페라리뿐만이 아니다. 벤츠의 전기 세단 EQS는 매끈한 곡선형 차체 때문에 ‘컴퓨터 마우스’ ‘비누’를 닮았다는 놀림을 받았고,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6는 ‘다리미’, 혼다e는 ‘토스터기’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숱한 최신 전기차가 도로에 나오자마자 가전제품으로 강제 전직을 당한 셈이다.

현대자동차의 순수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의 순수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사진=현대차)
자동차 회사들은 어쩌다 수천만원짜리 가전제품을 만들어놓고 자동차라고 우기게 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주행거리다. 전기차 시장에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가격과 함께 상품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그렇다고 무겁고 비싼 배터리를 무작정 욱여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자동차 회사들은 한정된 전력으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리기 위해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골몰한다. 전면부를 낮고 둥글게 다듬고, 보닛-지붕-트렁크를 하나의 완만한 곡선으로 잇는다. 멋과 개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주행거리 1km를 더 챙기는 편이 제조사로서는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다.

BMW의 순수 전기차 'BMW i3' (사진=BMW)
BMW의 순수 전기차 'BMW i3' (사진=BMW)
전면부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라진 것도 전기차가 어색해 보이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처럼 엔진을 식히기 위해 전면부에 커다란 그릴을 둘 필요가 없다. 제조사들은 밋밋해진 앞모습에 갖가지 패턴을 새겨 넣지만, 수십 년간 커다란 그릴에 익숙해진 소비자 눈에는 여전히 영 낯설기만 하다.

바닥에 깔린 배터리도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대다수 전기차는 크고 평평한 배터리 팩을 차체 바닥에 배치한다. 무게중심을 낮추고 실내 공간을 넓히는 데는 유리하지만, 배터리 두께만큼 바닥이 높아지고 차체도 두툼해지기 쉽다. 이렇게 배터리로 한껏 불어난 몸통을 다시 공기역학적인 곡선으로 다듬다 보면 그동안 내연기관차에서는 볼 수 없던 어딘가 어색한 실루엣이 완성된다.

혼다의 도시형 순수 전기차 '혼다e' (사진=혼다)
혼다의 도시형 순수 전기차 '혼다e' (사진=혼다)
그렇다고 앞으로 등장할 모든 전기차가 청소기나 비누를 닮을 운명은 아니다. 기아 EV9처럼 각진 차체를 당당하게 앞세우거나, 포르쉐 타이칸처럼 고유의 날렵한 스포츠카 라인을 살린 전기차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은 주행거리를 1km라도 늘리는 게 아쉬운 지경이지만, 훗날 배터리 기술이 발전해 주행거리 불안이 줄면 공력 성능을 양보하고 개성을 선택할 여유도 생길 것이다. 오늘날 논란의 전기차들은 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려다 비슷한 모습으로 수렴한 과도기의 산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포르쉐의 순수 전기 세단 포르쉐 타이칸 (사진=포르쉐)
포르쉐의 순수 전기 세단 포르쉐 타이칸 (사진=포르쉐)
언젠가는 각지고 날카로운 차부터 우아하고 육중한 차까지, 브랜드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전기차가 다시 거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배터리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는데도 전기차들이 여전히 청소기를 닮아 있다면, 그때야말로 달아나는 디자이너들을 붙잡아 기둥에 묶어놓고 이유를 캐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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