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이제 성장은 신뢰에 달려 있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8월 24일, 오전 05:05

박진 교수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대체로 말해서 ①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②사람들을 상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세계가치관조사(2022년)가 던진 이 질문에 한국의 ①신뢰 응답율은 33%에 불과하다. 북유럽은 60~70%대, 서유럽은 40~50%대이며 미국(37%)·일본(34%)·한국(33%)에 이어 남유럽은 20%대, 중남미·아프리카는 20% 이하로 나타난다. 우리의 지인에 대한 신뢰는 조사대상국 평균 이상이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선 평균 이하로서 그 차이가 매우 컸다.

낮은 사회적 신뢰는 우리의 행복을 떨어트리고 사회통합도 저해한다. 신뢰가 낮으면 대체로 조세부담률도 낮게 나타나므로 통합을 위한 사회보장 확대도 어려워진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North)는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낮춰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결정한다고 설파했다. 신뢰가 낮으면 감시비용이 높고 계약·행정절차가 많고 포지티브 규제가 유지되고 장기적 모험투자는 기피하며 협력과 분업은 저해되기 때문이다. 투입에 의한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른 지금, 성장의 미래는 신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를 높이려면 타인도 규범을 지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런 믿음이 강화될까. 첫째, 규범이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책임을 모면키 위해 과도하게 높은 규범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 국민과 기업을 범법자로 만들어 공무원에게 눈감아 주는 권한을 선사한다.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규범은 결국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킨다. 모든 규제의 준수 여부를 조사해 위반이 보편화한 조항은 현실화해야 한다.

둘째, 규범이 존중돼야 한다. 그러자면 위반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엄해야 한다. 모든 법이나 제도는 우리가 만든 시민간 약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의 룰을 공권력에 의한 강제로 인식한다. 그래서 처벌강화를 우리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공권력의 탄압으로 간주한다. 단속·처벌을 강화하면 서민의 등을 친다는 감성까지 발동된다. 그 결과 형사처벌, 과태료, 범칙금, 민사 손해배상, 징벌적 배상, 집단소송, 자격·면허 취소 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벌칙 수준은 타 선진국에 비해 약한 편이다. 위반에 대한 벌칙이 약한 사회는 규범준수에 소홀해져 결국 신뢰가 약화된다.

셋째, 규범이 평등하게 집행돼야 한다. 사법불신을 초래하는 전관예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전관예우 규제는 1년 수임제한에 그치고 있는데 차성한(2019)에 의하면 이는 제한 범위면에서 세계적으로 약한 수준이다. 개정법이 발의됐으나 아직 통과되진 못하고 있다. 모성준(2025)은 실형이 확정됐음에도 아직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은 ‘실형 미집행자’가 2020년 4548명에서 2024년 6155명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전관예우를 의심케 하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법 앞의 평등을 위한 국선변호인제도나 공공법률서비스 확대도 필요하다.

넷째, 규범 위반을 판단하는 시간적·물질적 비용이 낮아야 한다. 사법부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그 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2024년 민사 1심 합의부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437일이었는데 이는 2019년의 298일보다 47% 늘어난 것이다. 대법원 판사를 늘리는 것보다 일선 판사 수를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 세무조사가 해당 기업에 많은 부담을 주다보니 하나의 벌칙처럼 됐다. 국세청도 세무조사 혁신방안 등 나름 노력하고 있으나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을 방문해 장부를 뒤져야 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탈루 위험은 상당 부분 사전 탐지가 가능하다. 현장조사는 매우 예외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시행되는 경우에도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판정 기능이 빨라져야 거래비용이 줄어든다.

우리의 사회적 신뢰가 낮다는 뜻은 반대로 우리에게 성장잠재력을 대폭 향상시킬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신뢰로 성장과 통합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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