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도 마찬가지다. 기관투자자가 고객으로부터 맡은 재산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관리하기 위한 행동원칙이다. 핵심은 코드를 얼마나 충실하게 따랐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재산을 맡긴 사람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충실하게 행동했느냐에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수탁자책임이 충분히 지켜져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일부 금융회사나 자산운용사가 자신에게 돈을 맡긴 고객보다 자신이 속한 금융그룹이나 계열회사의 이해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의심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했고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그 해법이 집사의 행동을 정부가 일일이 정해주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주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집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다. 집사가 정부가 정한 에티켓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보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이 원하지도 않은 표준화된 행동을 집사에게 요구하고 이를 규정과 평가, 제재를 통해 강제하기 시작한다면 정작 주인의 이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더욱이 모든 주인이 같은 것도 아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가입자는 다르고 보험회사와 자산운용사의 고객도 다르다. 투자기간과 위험부담 능력, 자산구성, 운용 목표 역시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이 수행해야 할 수탁자책임의 구체적인 모습도 같을 수 없다. 하나의 ‘바람직한 스튜어드십’을 정해 놓고 모든 기관투자자에게 동일한 행동을 요구한다면 서로 다른 주인을 섬겨야 하는 집사들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정 기업에 대한 강경한 주주제안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은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으로 보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행동 자체가 좋은 스튜어드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투자자에게 주주활동은 고객의 장기적 이익을 높이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활동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 원칙은 국민연금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기업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가 높아지고 그 성과가 국민연금의 수익으로 돌아오면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장래 가입자와 수급자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은 기업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입자와 수급자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체질이 개선되고 지배구조가 건전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이 기업개혁기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업을 바꾸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과 ‘가입자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겉으로는 같은 행동처럼 보여도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은 국민연금 자체를 위해 생긴 권리도 아니다.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주식을 취득하면서 발생한 권리를 국민연금이 수탁자로서 행사하는 것이다.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기업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판단해야 한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에서도 가입자와 수급자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한 판단원칙이었다. 물론 이것이 당장의 기금수익만 높이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기적으로 기금에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가입자와 수급자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행동이라면 수탁자책임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투자기간과 위험, 기업의 장기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가진 거대한 규모와 공적 성격 때문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다는 점이다. 국민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 그러다 보면 “주주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행사하라”, “기업을 바꿔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라”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필요한 질문은 그것보다 먼저다. “이 행동이 정말 가입자와 수급자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정치적으로 환영받는 행동인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행동인지보다 국민연금이 맡고 있는 재산의 주인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정부가 제도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며 기관투자자가 자신이 약속한 수탁자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독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해상충을 막고 정보공개와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기업과 대화해야 하는지, 무엇을 중요한 ESG 요소로 판단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주주활동을 해야 하는지까지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고 이를 이행점검과 평가를 통해 사실상 강제하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 순간 수탁자책임이 행정적 준수의무로 변질될 위험이 생긴다.
기관투자자는 고객의 이익을 판단하기보다 정부가 정한 기준을 얼마나 충실하게 준수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선택은 고객에게 가장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평가에서 문제되지 않을 행동을 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래 추구했던 기관투자자의 책임성과 자율성은 오히려 약화할 수도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부를 위한 코드가 아니다. 기업을 개혁하기 위한 코드도 아니다. 재산을 맡긴 사람과 그 재산을 맡은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 정부와 규제기관의 역할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객과 기관투자자 사이에 약속된 수탁자책임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해상충이나 불공정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경기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살피는 심판이어야 한다. 심판이 선수에게 어디로 패스하고 언제 슛해야 하는지까지 지시하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선수의 판단과 책임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정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집사는 누구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가”의 문제다. 그 답은 정부도, 기업도, 정치권도 분명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