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도시재생 신화’ 영주…이젠 창업 메카 됐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6일, AM 02:59

[영주=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경상북도 영주시 중심가에서도 차로 한참을 달려야 닿는 이산면.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자 넓은 부지에 자리한 폐교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 학생들로 북적였을 운동장에는 공연장이 들어서 있고, 교실이었던 공간에서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 준비, 노래와 춤 연습에 한창이다. 건물 한켠에서는 동네에서 유일한 카페가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 곳은 약 40년간 경북 영주와 봉화 지역의 건설산업을 지탱해온 지역기업 고려레미콘 등이 후원해 만들어진 '소백산예술촌'이다. 지역 청년 유출을 막고 외지 청년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지역 활성화 실험을 한차례 거쳤다.

한때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도시재생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혔던 영주가 이제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자체가 공간을 만들고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자본과 창업가가 지역에 들어와 돈이 돌고 사업이 만들어지는 지역 벤처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영주에는 소백산예술촌을 운영하는 조국원 클라우드컬처스 대표처럼 현지 출신인 청년들이 세운 스타트업이 여럿 있다. 마을기업 '남산선비마을', 공연·예술단체 '세로토닌예술단', 글로벌 과실전문 농업회사 '디에스푸즈' 등이 대표적이다. 영주 출신인 가족을 둔 웰니스 기업 '사유의 정원'도 있다.

소백산예술촌 건물 1층 작업실에서 고등학생 인턴이 목재 굿즈를 제작하느라 분주하다. (사진=박소영 기자)
소백산예술촌 건물 1층 작업실에서 고등학생 인턴이 목재 굿즈를 제작하느라 분주하다. (사진=박소영 기자)




◇도시재생사업 중심으로 인프라 정비

이재명 정부가 지역 활성화 정책을 적극 펼치면서 올해부터 지역성장펀드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영주가 포함된 대구·경북권에는 모태펀드가 750억원을 출자해 최소 1250억원 규모 모펀드가 조성될 예정이다. 지역기업에 투자하는 자펀드와 프로젝트펀드 등을 만들어 지역 내부에서 자본이 순환되는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영주는 2014년부터 도시재생선도사업을 펼쳤다. 철도 이용객 감소와 지역경제 쇠퇴로 인구가 줄어들자 노령인구만 남은 구도심을 정비했다.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노후 시설을 리모델링했다. 지역 특산물인 △사과 △인삼 △선비 △철도 △한우 등을 기반으로 한 마을기업을 만들어 어르신과 청년들이 이끌기도 했다.

영주는 도시재생센터를 중심으로 민간전문가를 참여시켜 행정과 주민을 연계하고 총괄했다. 김희현 영주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도시재생사업은 일종의 마중물로 활성화까지 이어지려면 각 부처 간 협업으로 연계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며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다루던 사업들을 다루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해 돌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영주 구도심 상권의 중심을 담당했던 중앙시장. 이곳은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창문이 깨지고 부서진 빈 점포가 늘어선 낙후된 시장으로 전락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도시재생선도사업으로 외관과 공용공간을 정비했다. 청년 공방과 버스킹과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들여 공예·예술 중심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주말을 앞둔 중앙시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관광객과 장을 보는 주민들로 북적여야 할 시간대지만 시장 내부는 고요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주인 잃은 점포가 곳곳에 자리한다. 중앙시장뿐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거점시설로 떠오른 지역 곳곳이 비슷한 경우가 적잖다. 공공 주도로 공간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지역활성화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앙시장 모습. (사진=박소영 기자)
중앙시장 모습. (사진=박소영 기자)




◇공간 조성 넘어 민간자본 유치·창업 생태계 조성으로

영주가 눈을 돌린 곳은 민간이다. 청년 창업과 민간투자, 로컬 브랜드를 한데 묶어 지역 안에서 성장하고 자본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년 창업공간 '스택스(STAXX)'다. 임팩트 측정·관리 전문기업 임팩트스퀘어가 SK머터리얼즈(현 SK스페셜티)와 손을 잡고 2022년 9월 개소한 공간이다. 당시 임팩트스퀘어는 50억원 규모에 달하는 소셜벤처 투자펀드도 조성했다.

스택스가 기존 도시재생 공간과 다른 점은 단순히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한 뒤 투자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최근 스택스로부터 자문을 받은 반려동물을 위한 작은 한옥 브랜드 온처마가 중소기업벤처부의 모두의창업 1기 2라운드에 진출하기도 했다. 공공 도시재생사업으로 만들어진 공간 위에 민간 투자사와 기업 자본이 들어오고, 그 안에서 영주 출신 청년들이 직접 지역 자원을 사업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영주 사례는 지역 활성화 정책의 중심축이 보조금·공간 조성에서 투자자본 공급과 자생적인 투자생태계 구축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 출신이자 국민의힘 청년 비례대표로 활동 중인 허지훈 경북도의원은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지 떠날지를 선택할 수 있게 기본적으로 부족한 인프라 등을 채우고 이곳에 남을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정치권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규모가 큰 도시는 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유치가 가능하지만 중소규모 도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스타트업, 외국인 인재 유치 등 대규모 도시와 경쟁했을 때 승산 있는 요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택스는 지난 3월 로컬창업가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창업가들의 상품 서비스를 지역주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플리마켓을 개최했다. (사진=임팩트 스퀘어)
스택스는 지난 3월 로컬창업가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창업가들의 상품 서비스를 지역주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플리마켓을 개최했다. (사진=임팩트 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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