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왼쪽)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7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아시아 에너지 안보 협력 한-IEA 양해각서(MOU)를 체결 뒤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2026.9.17 © 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망을 누가, 얼마나 부담해 건설할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공공 재원이 전력망 투자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력망 건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전력 수요처를 발전시설 가까이 배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한국이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사실상의 '에너지 섬'이어서 전기화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제주를 2035년 탄소중립섬으로 만드는 실증을 거쳐 본토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비롤 사무총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한-IEA 회복탄력적·통합적 아시아 에너지 안보 협력(RISE ASIA) 파트너십 업무협약(MOU) 뒤 언론과 만나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망 투자와 비용 분담 문제에 대해 "전력망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전력망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 "국가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모든 나라에서 공공 재원(public sources)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공공부문이 초기 투자 여건을 조성하고 이후 민간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다만 전력망을 계속 늘리는 것만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비롤 사무총장은 "데이터센터와 같은 주요 에너지 소비시설을 발전이 이뤄지는 곳과 더 가깝게 건설할 수 있다"며 "그러면 건설해야 할 전력망의 양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17일 청와대에서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9.17 © 뉴스1 이재명 기자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대규모 첨단산업 전력수요가 새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발전설비와 산업 입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다만 비롤 사무총장은 특정 국내 클러스터의 입지나 비용분담 비율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앞서 비롤 사무총장은 선제적인 전력망 투자가 수요 둔화 때 과잉투자나 좌초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질문에는 세계 자본의 이동과 전력수요 증가를 근거로 전기화 자체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 세계 에너지 투자의 40%가 전력 부문에, 나머지 60%가 화석연료 등에 투입됐지만 올해는 전력 부문이 61%, 화석연료가 39%로 역전됐다고 설명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전력수요는 전체 에너지 수요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전기화로 가는 길이 장밋빛(Rose Garden)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목표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화 과정의 가장 큰 과제로는 전력망과 비용을 꼽았다. 발전설비와 소비지역을 연결할 충분한 전력망이 필요하고, 동시에 소비자가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후자의 경우에도 정부가 다양한 재정 수단을 통해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발 LNG 수급 불안도 경고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에서 벗어나며 LNG 수입을 늘리는 상황에서 겨울철 유럽과 아시아의 구매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에는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확대하되 원전을 함께 활용하고, 불가피한 LNG 수입은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도록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이 가진 구조적 약점도 기자회견에서 직접 거론됐다. 김 장관은 한국이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에너지 섬'인 데다 국토 여건상 재생에너지 활용에도 제약이 있다며 전기화에 불리한 조건을 인정했다. 다만 "자원이 많아서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라며 돌파 가능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제주를 2035년 탄소중립섬으로 만드는 실증을 거쳐 전기화 모델을 본토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의 '에너지 섬' 문제를 동북아 국가 간 전력망 연결로 풀겠다는 구상이 이번 RISE ASIA에 포함되진 않았다. 남북한 전력망 연결과 동북아 계통 연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비롤 사무총장은 "남북한 문제는 IEA의 역할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IEA는 당분간 에너지 지원 수요가 큰 동남아시아에 중점을 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RISE ASIA는 국가별 전기화 로드맵부터 구체화할 전망이다. 비롤 사무총장은 전기화를 원하는 아시아 국가별로 로드맵을 만들고 단계별 목표와 필요한 금융·경제·에너지 정책을 분석해 한국 정부와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배터리와 전선·케이블, 변압기 등을 생산하는 한국의 제조기반을 강점으로 꼽았다. 단순한 정책협의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 각국의 전기화 계획과 한국의 에너지 제조업을 연결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ac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