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를 단속 과정의 마찰로 넘길 일이 아니다. 농지는 어떻게 쓰고 농업은 어떻게 바꾸며 농민은 어떻게 잘살게 할 것인지 되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혼란의 밑바탕에는 오래된 농지정책의 악순환이 있다. 식량안보를 내세워 농지를 다른 용도로 쓰기 어렵게 한다. 쌀 중심의 생산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든 가운데 쌀이 남으면 정부가 사들여 가격을 떠받친다. 농가소득은 직불금 등으로 보완한다. 땅과 농민의 선택을 제약하고 그 부담을 재정으로 메우면서 정작 구조개혁보다 투기 단속을 앞세우는 셈이다.
밥상은 이미 크게 달라졌다. 가구 부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에서 2025년 53.9㎏으로 줄었다. 1970년의 40%에도 못 미친다. 먹는 것은 달라졌는데 땅을 쓰는 생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소비 변화에 맞춰 생산구조를 바꾸지 못한 대가는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2021~2024년산 쌀을 연평균 약 31만 t씩 시장에서 격리했고 매입비로만 약 2조 6000억 원을 썼다. 2020년 쌀값 하락분을 보전하던 변동직불제가 폐지되고 농가소득 안정과 농업의 공익기능을 지원하는 공익직불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가격은 시장격리로 지탱하고 소득은 직불금으로 보완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농지 활용과 농민의 전업 기회를 넓히지 않으면 이러한 정부 지원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장려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올해 전략작물직불 지침은 과잉이 우려되는 백태·콩나물콩의 직불금 신청을 전년도 이행 농가와 면적을 기준으로 제한했다. 다른 작물을 늘려도 수요와 판로가 따라주지 않으면 과잉의 품목만 바뀔 수 있다. 농업 안에서 작물만 바꾸는 것으로 충분한지 물어야 한다.
농가를 돕는 일과 모든 농지의 현재 용도를 유지하는 일은 같은 목표가 아니다. 농지는 실제로 줄어 왔고 전용도 허용되지만 더 생산적인 쓰임을 찾는 길은 여전히 멀다. 농민에게는 보조금뿐 아니라 자산 활용과 전업의 기회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책의 방향을 세 가지로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식량안보의 기준을 농지 면적에서 생산성과 공급 능력으로 넓혀야 한다. 우량 농지와 물, 종자와 기술, 비축과 수입선 다변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 쌀을 많이 쌓아 둔다고 밀과 사료곡물의 수입 위험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품목별로 따져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수단이 스마트팜을 비롯한 농업기술의 발전이다. 온도와 습도, 물과 양분을 데이터로 관리하면 같은 면적에서도 생산을 안정시키고 노동과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딸기 스마트팜 모형은 환경관리 지능화, 농작업 자동화, 에너지 효율화를 결합했다. 농업 경쟁력이 땅의 넓이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시설원예의 성과를 벼와 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곡물에는 품종 개량, 정밀한 물·비료 관리, 기계화와 규모화 등 작물에 맞는 혁신이 필요하다.
품목별 생산성을 높여 필요한 생산량과 위기 대응 여력을 확보한다면 농지 일부를 줄이면서도 식량안보를 지킬 가능성이 커진다. 생산성 향상과 농지 전환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생산성 향상분을 무조건 증산으로 연결하면 또 다른 과잉을 부른다. 수요에 맞춰 생산하고 여유가 생긴 저생산성 농지를 다른 부문에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에 남는 사람은 비용을 줄여 소득을 높이고 은퇴하거나 전업하는 사람은 땅의 새로운 쓰임에서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둘째, 농지 전환을 농민의 소득과 국토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도 땅의 쓰임을 바꾸자는 발상이다. 농지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도시와 붙어 있거나 도로에 잘려 경작이 비효율적인 농지를 기업의 투자 부지, 주거·의료·돌봄 시설로 전환하면 농민에게는 자산가치를 실현할 기회가 생긴다. 지역에는 투자가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겨 경제 전체의 생산성과 소득을 높일 수 있다.
토지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모두 투기라고 부를 수는 없다. 개별 농민은 전용으로 높아진 가치를 얻고 경제 전체는 활용 가능한 토지의 공급 확대로 입지 비용을 낮출 여지를 얻는다. 실제 투자를 통해 새로운 소득을 만드는 길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농민에게 농사를 그만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잠정 결과, 농가 인구의 절반을 넘는 51.3%가 65세 이상이다.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려던 경자유전의 취지가 농민을 평생 농사에 묶어 두라는 뜻일 수는 없다. 적법한 전용과 매각을 연계해 노후자금을 마련하거나 장기 임대와 사업 참여로 수익을 얻도록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농지 활용의 이익이 농민에게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산업 수요와 기반시설을 확인해 농지 활용계획을 세우고 중앙정부와 함께 전용 기준과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농업에 필요한 핵심 농지에는 기술과 자본을 집중하고 다른 용도의 가치가 더 큰 농지는 과감히 전환하자. 재정도 과잉생산의 뒷수습에서 생산성 향상, 농민의 은퇴·전업, 지역의 새로운 투자 지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셋째, 이번 농지조사를 단속 중심에서 영농 보호와 제도개선 중심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합법적인 임대차와 처분 대상의 기준을 명확히 알리고, 고령·질병·상속 등 개별 사정을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 실제 경작자의 영농이 끊기지 않도록 현장을 점검하고 시정 가능한 사안에는 정상화할 기회를 줘야 한다. 위법 행위를 가려내되 농민의 생업을 지키는 조사여야 한다.
나아가 이번 조사를 농지 활용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논의로 이어가자. 어떤 땅을 지키고 어떤 땅의 쓰임을 바꿔야 하는지, 농민은 무엇을 원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투기 단속으로 시작한 조사가 낡은 농지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이번 혼란을 넘어설 길도 찾을 수 있다. 농지는 농민을 붙들어 두는 족쇄가 아니라 농민과 나라를 더 잘살게 할 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