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늘려선 해킹 못 막는다"…은행권 보안 투자, 패러다임 바꿔야

경제

뉴스1,

2026년 October 14일, AM 05:30

사진은 7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모습. 2026.10.7 © 뉴스1 김진환 기자

은행권이 잇따른 해킹 사고에 대응해 보안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격에 맞서려면 단순한 투자 확대를 넘어 보안체계와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해킹과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보안 투자와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 대응 태스크포스(TF)와 유출 고객 전담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내년 정보보호 예산을 1000억 원 이상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 약 51억 원 규모의 AI 위협 대응 신규 보안 사업도 연내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신한은행은 정보보호 예산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편성할 계획이다. 외부 공격 표면의 취약점을 점검하는 전문가 서비스를 상시 계약 체계로 전환한다. 이를 토대로 'Agentic SOC'(지능형 보안관제센터)를 구축하고 AI 보안 전문가와 화이트해커 영입도 추진한다.

하나은행은 AI 기반 사이버보안 플랫폼과 보안 패치 자동화, AI 자동 모의해킹 플랫폼 등을 구축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에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체계를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AX보안팀을 신설해 AI 레드티밍과 AI 보안성 검증을 맡기고 있다. 보안 전문인력도 10% 이상 늘리고 내년 관련 예산을 20% 이상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는 11월에는 신규 AI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연말까지 안정화할 계획이다.

NH농협은행은 오픈소스 취약점 분석과 보안 아키텍처 설계, 화이트해커 분야의 전문인력 추가 채용에 나섰다. 연말 정기인사와 조직개편 때도 정보보안 인력을 늘릴 예정이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보안 예산과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 보안 수준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존 보안체계가 외부 침입을 막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공격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고 피해를 차단·복구할 수 있는지까지 평가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금융 보안은 방화벽·망분리 같은 경계 차단에 집중했는데 AI 공격은 외부 연계 시스템의 취약점을 빠르게 탐색하고 접근 경로까지 악용한다"며 "기존 체계의 한계가 이번 사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보안 투자에 대한 평가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안 투자는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공격을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차단했으며 얼마나 빨리 복구했느냐로 평가돼야 한다"며 "탐지 시간과 대응 시간, 복원력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금융사 차원을 넘어선 공동 대응 체계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황 교수는 "AI 공격은 동일한 취약점을 여러 기관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며 "시중은행이든 저축은행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이 들어오는 만큼 금융보안원 데이터를 토대로 금융위원회가 컨트롤타워가 돼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패치를 일괄 배포하는 국가 차원의 공동 방어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기관이 보안 책임을 직접 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에는 시스템을 완비하면 보안이 완성된다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상시 보안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재직 당시 취약점 신고·공개 제도(VDP)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VDP는 외부 전문가 등이 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해 신고하면 이를 검증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제도다. 임 의원은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에 취약점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꿨다"며 국내에서 제도의 활성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안 책임을 금융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금융권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금융사가 인터넷에서 보안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고 액티브X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결국 책임을 지지 않고 사용자에게 지우려는 것"이라며 "금융기관이 직접 보안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안 거버넌스 개편도 주문했다. 임 의원은 "현재 공공은 국가정보원이, 민간은 금융보안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눠 맡고 있는데 구분해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라며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8일 전체 회의에서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시중 은행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5대 은행장들은 오는 19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연쇄 해킹 사고의 원인과 금융사들의 보안 관리 실태 등에 대한 질의를 받을 전망이다.

유동수 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6.10.1 © 뉴스1 신웅수 기자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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