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7일(현지시간) 국제 세미나에서 AI 시대의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진짜 원인은 AI의 기술적 결함이 아닌 금융 시장 자체의 레버리지 구조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AI 시대 금융안정의 해법으로 자본 확충과 레버리지 제한 같은 고전적 규제 수단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7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G30 국제은행세미나(IBS)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생중계 화면 캡처)
신 총재는 이날 태국 방콕에서 열린 G30 국제은행세미나(IBS)에서 금융안정과 관련 지난 8월 잭슨홀 미팅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당시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교수가 ‘AI와 금융안정’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고 라구람 라잔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고 소개하면서다.
신 총재에 따르면 라잔 교수는 이 자리에서 ‘AI 모델 자체가 매우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일정한 보호막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신 총재는 “일반론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내부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 형태의 AI 알고리즘과 비투명성이 새로운 시스템적 위험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신 총재는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다양한 제약 조건에 직면해 있어, 충격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행동이 동기화될 수 있다”고 봤다. 투자자들이 저마다 다른 AI 비서나 알고리즘을 활용하더라도, 시장 전체가 차입금으로 덩치를 키운 상태라면 충격이 발생했을 때 똑같은 매도 행동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 (사진= AFP)
신 총재는 이러한 행동 동기화 현상을 2000년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 개통 당시 일화에 비유했다. 개통 첫날 수많은 인파가 몰리자 다리가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렸고, 당시 보행자들은 다리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그러자 다리의 진동이 급격히 커졌다.
신 총재는 “다리는 가격 메커니즘이고, 보행자는 레버리지를 일으킨 금융기관”이라며 “가격 자체가 동기화 메커니즘(coordination mechanism)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두가 레버리지를 일으킨 상태에서 가격이 떨어지면 수많은 주체가 강제 매도자(forced seller)가 되고 이에 따라 가격이 더 떨어지면 사람들은 더 팔게 된다”며 “그러면 서로 다른 AI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우리 행동은 순식간에 동기화되고 만다”고 짚었다. 결국 폭락장이 형성되면 AI 알고리즘의 차이에 상관없이 살기 위해 위험 자산을 던지는 행동이 일시적으로 동기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IBS는 국제 금융 전문가 모임인 G30(Group of Thirty)이 주최하는 회의로, 매년 10월에 연례 세미나를 개최한다. (사진= 생중계 화면 캡처)
신 총재는 이 같은 위기가 AI라는 신기술 때문에 발생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금융 시장 고유의 본질적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참가자들이 정말 다양하다면 가격이 떨어질 때 강제 매도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낮은 레버리지, 높은 자본 요건, 더 강력한 안전장치가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러한 고전적인 규제 도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초래할 미래 금융위기 극복의 열쇠가 전에 없던 규제가 아니라, 레버리지를 낮추고 자본 건전성을 강화하는 등 금융 당국의 전통적인 안전장치를 더욱 견고히 다지는 데 있다는 제언이다.
한편 IBS(International Banking Seminar)는 국제 금융 전문가 모임인 G30(Group of Thirty)이 주최하는 회의다. G30은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금융계 인사, 경제학자 등 국제 금융·경제 분야 전문가 약 30명으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 협의체로 매년 10월 주요 20개국(G20)·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기간 중 연례 세미나를 개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