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부터 신경영까지…초일류 삼성 만든 이건희의 결단

경제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5일, PM 04:01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별세 6주기(10월 25일)를 맞아 그가 남긴 경영 유산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선대회장이 사재를 투입해 시작한 반도체 사업은 반세기 만에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했다. 품질 중심의 신경영과 능력 중심의 인사 문화 확립은 오늘날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이 선대회장의 유산은 산업을 넘어 문화예술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1년 7월 29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를 참관한 뒤 사업장을 떠나면서 직원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1년 7월 29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를 참관한 뒤 사업장을 떠나면서 직원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올해 추도식은 기일이 일요일인 점을 고려해 이틀 앞당겨 지난 23일 진행됐다. 이재용 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 건설현장 점검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직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선영을 찾아 부친을 추모했다. 이후 사장단과 경기 용인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메모리 산업이 초호황기를 맞은 가운데 이 회장이 이번 오찬에서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언급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당부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는 회장 취임을 앞둔 2022년 추도식 이후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이 선대회장이 강조한 선행투자와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분기 영업이익 100조 신기원’의 밑바탕에는 반도체의 가능성을 일찍 내다보고 고비마다 과감한 투자를 이어간 그의 결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1974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사재 50만달러로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 사업의 토대를 놓았다. 삼성 내부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반도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판단했다. 이후 기술개발과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고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그는 고비마다 웨이퍼 크기를 키우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은 1993년 당시 주류였던 6인치보다 큰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양산라인을 가동했다. 2001년에는 12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가동하며 대구경 웨이퍼 전환을 이어갔다. 더 큰 원판에서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생산해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물론 위험도 컸다. 웨이퍼 크기를 바꾸려면 생산라인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더 넓은 원판에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공정기술도 확보해야 했다. 수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생산량 확대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막대한 투자 손실을 떠안을 수 있었다. 이 선대회장은 이런 부담에도 차세대 생산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쪽을 택했다.

이 같은 투자와 혁신은 오늘날 삼성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삼성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39.4%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낸드도 29.3%로 1위였다. 올해 3분기에는 연결기준 잠정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 주요 빅테크도 넘지 못한 고지에 삼성전자가 먼저 오른 것이다.

기술 혁신과 함께 조직문화도 바꿨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한 ‘신경영’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며 양적 성장에서 품질 중심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1995년에는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전화 등 약 500억원 규모의 제품을 폐기하며 품질경영 의지를 드러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론을 강조하며 1990년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문화유산도 세계 무대에서 한국 미술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평생에 걸쳐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썼다. 유족들은 2021년 4월 고인이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기증품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비롯해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의 근현대미술 작품과 모네·피카소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이 포함됐다. 국내 순회전 누적 관람객은 35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을 시작으로 시카고미술관을 거쳐 이달부터 대영박물관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대영박물관의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은 42년 만이다. 이 선대회장은 생전 해외 주요 박물관의 한국관 설치를 지원하고 예술가들의 해외 활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반도체 투자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 데 이어 문화유산 보존과 후원을 통해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 셈이다.

한편 삼성은 오는 28일 경기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이 선대회장 6주기 추모 음악회를 개최하고 추도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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