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한리 해변에서 서퍼들이 가을 파도를 타고 있다. 2026.11.1 © 뉴스1 최창호 기자
전 세계 서핑 인구가 3500만 명을 돌파하고 관련 서핑관광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에 가까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해양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파도와 해안 기상이 인공지능(AI) 기술과 위성·센서 관측망의 결합을 통해 데이터로 정밀하게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해양 관측 정보에 인공신경망(ANN)을 접목해 최적의 파도를 예측하고 해안 환경을 실시간 감시하는 이른바 '해안 인텔리전스(Coastal Intelligence)' 산업이 세계 해양 시장의 새로운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폭풍해일, 이안류 등 복합 해안재해의 빈도와 피해 규모가 전 지구적으로 급증함에 따라, 정확한 해양 데이터는 단순히 레저의 편의를 돕는 정보 서비스를 넘어 국가 방재 및 해안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데이터 인프라로 빠르게 재편되는 추세다.
기후재해 폭증과 환경 규제 강화…국가 방재 인프라로 진화한 '해안 데이터'
유럽연합 오션아이 개념도(출처: 인사이트EU 누리집)
기후위기 고도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폭증은 전 세계 정부와 산업계에 해양 데이터 확보라는 시급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의 세계 재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년간(2000~2019년) 발생한 자연재해 건수와 피해액은 과거 20년(1980~1999년) 대비 약 2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에서도 10억 달러 이상의 대형 피해를 낸 자연재해가 1980년대 연평균 3건에서 최근 10년간(2016~2024년) 연평균 2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재해 예측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고도화된 해양 관측 체계 구축이 각국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며 해양 데이터의 산업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EU는 향후 10년간(2026~2035년) 총 9200만 유로를 투입하는 '오션아이(OceanEye)' 프로젝트를 전격 출범시켰다.
EU 집행위원회는 해양 관측에 투자한 1유로가 최소 5~6유로의 경제·사회적 편익으로 환원된다는 분석 아래, 2035년까지 세계 해양관측 역량의 35%를 확보하고 글로벌 해양관측 기술 시장의 25%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제 해양 규제 환경 역시 데이터 중심으로 가파르게 재편되는 추세다. 미국 하와이와 팔라우 등 주요 서핑 관광지들은 산호초 생태계 보호를 위해 특정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를 시행 중이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은 해양보호구역(MPA) 지정 시 관광·해운 사업자의 환경 데이터 공시 의무를 강화했다. 정교한 해양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은 관광 편의를 넘어 기업의 규제 대응 역량 문제로 직결된 셈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전 세계 서핑 용품 시장은 2026년 47억 달러에서 2035년 6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서핑 관광 시장 역시 연 6~9%대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수요는 최근 2년 새 45% 급증했다.
이와 함께 연간 100억~200억 유로 규모의 해양 관측 시장과 400억~900억 유로에 달하는 전후방 생태계 또한 해양 레저와 방재 산업의 시너지에 힘입어 가파른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수십 년 관측 DB '서프라인'부터 태양광 부이 '소파오션'까지…글로벌 혁신 가속
서프라인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 제부도의 데이터를 확인한 모습(2026년 8월 12일 기준)(출처: 서프라인 누리집)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오션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의 독점적 축적과 센서망 표준화를 무기로 세계 시장의 지배력을 가파르게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서프라인(Surfline)은 1985년 창업자 션 콜린스(Sean Collins)의 관측 일지에서 출발해 세계 최초로 AI 기반 서핑 예보를 상용화한 독보적 선도 기업이다. 서프라인의 핵심 경쟁력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넘어 수십 년간 축적한 100만 건 이상의 정밀 관측 데이터베이스(DB)에 있다.
수만 개 지점의 연안 파랑 모델 데이터에 자체 연안 모델링 기술을 적용하고, 수십 년치 관측치와 연결해 인공신경망을 학습시켰다. 이로써 전통 물리 모델이 가장 취약했던 파도가 부서지는 마지막 순간의 예측 오차를 극복했다.
더처닌그룹(TCG) 등으로부터 누적 428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서프라인은 의류 브랜드 립컬(Rip Curl)과 영상 자동추적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등 안정적 수익 구조를 다졌다.
민간 해양 센서망 분야에서는 미국 소파오션(Sofar Ocean)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 에너지고등연구계획국(ARPA-E) 지원을 받아 설립된 소파오션은 태양광 구동 소형 부이 '스포터(Spotter Buoy)'를 전 세계 바다에 배치해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센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장비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췄으며, 개방형 커넥터 표준 '브리슬마우스(Bristlemouth)'를 도입해 다양한 제조사의 수중 센서를 자유롭게 연동시켰다. 인큐텔(In-Q-Tel) 등으로부터 누적 785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소파오션은 국립해상대기청(NOAA)과 미 해군에 실시간 해양 데이터를 공급 중이다.
위성 탐사 분야에서는 인도 피어사이트(PierSight)가 두각을 나타낸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 출신 인력이 창업한 피어사이트는 합성개구레이더(SAR)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탑재한 위성 군집을 구축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술실증위성 '바루나(Varuna)' 발사에 성공해 기술성숙도(TRL, Technology Readiness Level) 7단계를 달성했으며, AI 분석 플랫폼 ‘마트시아(MATSYA)’로 불법 어업 및 기름 유출 감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미국 레이지서퍼(LazySurfer)의 딥러닝 개인화 예보, 코스탈메저스(Coastal Measures)의 데이터 표준화 플랫폼 ‘큐뮬러스(CUMULUS)’ 등 혁신 스타트업들의 성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소파오션의 항로 최적화 소프트웨어 웨이파인더(출처: 소파오션 누리집)
120만 서퍼 시대의 그늘…공공 인프라 넘어 '민간 AX 생태계' 키워야
국내 해양 레저 및 방재 데이터 시장 역시 폭발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서핑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서핑 인구는 2014년 4만 명 수준에서 2024년 120만 명으로 10년 만에 30배나 급증했다.
대표적 서핑 거점인 강원도 양양군의 경우 연간 50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 전국 서프숍의 60% 이상(70여 개)이 밀집해 있으며, 연간 300억 원 이상의 지역 경제 유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시장 성장과 기후변화가 맞물리면서 서핑 안전사고도 폭증해, 강릉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만 지난 7년간 연평균 117명(누적 821명)의 환자가 이송되었고 2023년에는 양양 해변에서 낙뢰로 인한 인명 사고까지 발생했다. 실시간 해양 데이터 기반의 안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술 및 산업 현황이 공공 인프라 구축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천리안 위성 2B호 발사, 초고속무선통신망(LTE-M) 기반 바다 내비게이션(e-Navigation) 구축, 해양수산 빅데이터 플랫폼 조성 등 세계적 수준의 공공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서프라인이나 소파오션처럼 고부가가치 AI 구독 서비스나 민간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한 국내 기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120만 명의 국내 서퍼들은 매일 해외 파도 예보 앱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 분야 연구원과 학계 전문가들은 "공공 관측 데이터가 민간 비즈니스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인프라가 '죽은 데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며 "공공 데이터의 민간 개방성과 접근성을 대폭 끌어올려 데이터 활용 생태계를 조속히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백상규 해랑기술정책연구소 대표는 "서프라인의 경쟁력이 수십 년간 쌓아온 국지적 관측 기록에서 나왔듯, 국내 기업들도 한국 해역 특유의 큰 조석차, 계절풍, 여름철 태풍 등 특수성을 반영한 독자적 고해상도 데이터셋을 우선적으로 축적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 대표는 "유럽의 오션아이 사례처럼 정부가 데이터 표준과 개방형 API를 적극 확충하고 양양·부산·제주 등 레저 거점을 국가 실증 무대로 개방해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위험 경보 기능을 결합한 '서핑 안전 인텔리전스' 플랫폼을 도입하고, 레저와 방재를 아우르는 통합 데이터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미래 해양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AI생성 이미지)
bsc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