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란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나 금 등 실물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가상자산을 말한다. 달러화에 연동된 코인이 대부분이며 테더(USDT)가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는데도 지난해 말 거래액이 급증한 것은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에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커지며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스테이블코인이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 역할을 하며 '사재기'가 이뤄진 셈이다.
작년 10월 국내 USDT 거래량 2조…12월엔 13조 '껑충'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별 테더(USDT) 거래량 추이. 업비트는 올해 1~2월 거래량은 제공하지 않았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22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환율 상승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은 2조 263억원이었다.
하지만 계엄령으로 달러·원 환율이 15년 9개월 만에 1480원을 돌파한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이 무려 13조 891억원에 달했다. 단 두 달 만에 6.4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국내 상장 주식 중 LG전자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에서 거래 규모가 가장 컸다. 지난해 10월 업비트 내 USDT 월 거래액은 약 1조 7604억4500만원이었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환율이 상승한 11월에는 5조 9617억5700만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최고치를 기록한 12월에는 11조 3917억6500만원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USDT 거래액은 빗썸보다 3위 거래소인 코인원이 많았다. 코인원, 빗썸, 코빗에서도 10월 대비 11월과 12월에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후 계엄령으로 인한 리스크가 줄어든 1월에는 USDT 거래량이 다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 다른 대형 스테이블코인으로는 USDC가 있다. 2018년 첫 발행된 후발주자이지만 발행사인 미국 기업 '서클'이 일찍부터 규제를 잘 준수한 덕에 스테이블코인 중 시총 2위가 됐다. 현재 USDC 시총 규모는 85조원(587억달러) 수준이다.
USDC 역시 국내 거래소에서 10월 대비 12월 거래액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액은 USDT에 비해 훨씬 적었지만, 증가 추이는 비슷했다.
업비트 기준 지난해 10월 USDC 월 거래량은 232억원에 불과했지만 11월에는 1019억 5600만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또 12월에는 1491억 7700만원으로 더 불어났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스테이블코인 거래, 왜 늘었나…"정국 불안에 달러 수요 상승"
이처럼 지난해 말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크게 불어난 원인으로는 환율 급등과 원화 가치 하락이 꼽힌다. 환율이 치솟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를 미리 사둬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이 때 달러를 사는 것보다 24시간 거래할 수 있는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사는 것이 훨씬 쉽다.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고 수수료도 훨씬 저렴한데 달러를 매입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급증한 배경이다.
임종인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전에도 정국이나 사회가 불안하면 사람들은 달러, 금 등 유사시에 쓸 수 있는 안전자산을 구매해왔다"면서 "달러를 직접 환전하는 건 굉장히 번거롭고 제약도 많다. 그에 비해 스테이블코인은 365일 24시간 살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밀어주고 있으니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달러의 실질적인 수요를 반영하는 것은 실제 환율이 아닌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환율에는 통화당국의 개입이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 환율 수준은 당국이 적극 개입해서 겨우 1500원을 넘지 않은 것"이라며 "당시 업비트에선 이미 USDT가 1500원대에 거래됐다. 업비트 내 USDT 가격이 사실상 '진짜 환율'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7일 환율이 1480원을 돌파했을 당시 업비트에선 USDT가 1510원 선까지 뛰었다.
가상자산 시장이 지난해 말 상승장에 진입했던 점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 증가에 영향을 줬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의 기축통화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으로 가상자산을 사고 판다는 뜻이다.
국내 거래소 내 자금을 해외 거래소로 보낼 때도 송금 시간 동안 가치가 변동할 수 있다는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로 유출된 테더(USDT), USDC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35조 3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국내 유입액도 비슷한 규모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을 기점으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모두 상승하는 이른바 '불장(상승장)'이 오자, 적극적인 투자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거래소로 보내며 거래량 증가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시장에서만 쓰일뿐 아니라, 해외 송금 등에 쓰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달러 송금과 같은 효과일뿐더러, 수수료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내고 스테이블코인의 용도가 가상자산 투자와 관련 없는 달러 기반의 국제 송금, 상품 및 서비스 결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