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1월 발행됐던 국내 최초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b'.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해외 자금이 유입되기 어려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거래소에 상장시켜 가격 차를 해소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포부는 좋았지만 시기가 너무 빨랐다. 당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조차 시장에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던 때였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중 대표주자인 USDC가 2018년 9월에 처음 발행된 것을 고려하면 시기가 너무 일렀던 셈이다. KRWb는 제대로 꽃도 피지 못한 채 실패한 프로젝트가 됐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특히 테더(USDT), USDC 등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보편화되는 것을 넘어 결제, 무역 등 일상 생활에서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유럽연합(EU), 미국, 홍콩 등 해외 국가들은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마련하며 제도권 편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비효율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외국인 자금은 국내 거래소 유입이 막혀 있는데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등록 해외 거래소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까지 생기면서 시장의 폐쇄성이 더욱 심화됐다. 김치프리미엄은 물론 때로는 '역프리미엄'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달러 기축통화국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디지털 병기'를 활용해 달러 패권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달러화 기축통화의 지위 강화를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할 것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에 지금이야말로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나올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문제는 여전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시장 규모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제도권에 안착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또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韓 시장 고질적 문제 '김프'…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소 가능
우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대두된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비효율이 꼽힌다.
블록체인 리서치 업체 포필러스와 해시드오픈리서치(HoR)는 지난달 이 같은 내용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 내용은 당국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김치프리미엄 △상장빔(신규 상장 시 상장 코인의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 △가두리 펌핑(특정 가상자산의 입출금을 일시 중단할 경우 해당 가상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 등이다.
포필러스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폐쇄적 시장 구조'를 꼽았다. 현재 국내 거래소는 비거주 외국인의 가입이 불가능하다. 시장 참여자가 한국인으로만 제한되니 유동성이 부족해지고, 글로벌 시장과 격리되니 가격 왜곡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이탈로도 이어지고 있다. 포필러스는 국내에서 해외로 나간 가상자산 출금액이 증가세인 점을 들어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이탈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꼽힌다. 포필러스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또는 온체인(블록체인상) 마켓에 상장된다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화 기반 자산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한국 시장과의) 양방향 자금 흐름을 가능하게 해 시장 간 가격 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투자자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를 시도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김치프리미엄을 감소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고, 해외 거래소에서 유통되기 시작하면 '김치프리미엄'이 해소되고 가상자산 가격이 이전에 비해 안정될 수 있다"고 짚었다.
"'통화 주권' 위해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
통화 주권의 관점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스테이블코인은 테더(USDT), USDC, 다이(DAI) 등이다. 이는 모두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이들 스테이블코인의 거래량은 증가하는 추세다.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환율 상승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은 2조 263억 원이었다.하지만 계엄령으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한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이 무려 13조 891억 원에 달했다. 단 두 달 만에 6.4배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국내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거래량이 늘어나고, 결제 기업 등 관련 업체에서 이들 스테이블코인들을 도입할 경우 국내 달러 의존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대응하려면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진석 한국디지털에셋(KODA) 대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통화 주권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시장도 잠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달러 가치가 계속 올라가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는데,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까지 쉽게 들어오면 국내 경제 상황이 남미 국가들처럼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원화의 사용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도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종섭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원화가 지급결제 수단으로 신흥국에서 자리잡게끔 하는 용도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될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되면 금융업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