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 사이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해외 결제·환전 시장의 판도를 바꾼 핀테크 기업 '트래블월렛'은 한 발 더 나간 구상을 내놓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코딩'을 접목해 금융 업무를 자동화하고 정보기술(IT)로 확장하면, 한국 금융사도 JP모건 등 글로벌 대형 금융사 견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포부다.
특히 지급 결제 핵심 시스템을 100% 자체 구축한 경험과 이해도를 바탕으로 다른 핀테크 기업보다 스테이블코인을 효율적으로 구현할 역량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현재 전 세계 46개국의 통화를 지원하는 트래블월렛의 글로벌 결제·환전 네트워크 역시 향후 스테이블코인 대중화 과정에서 강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트래블월렛이 글로벌 금융 시장의 판도를 다시 한 번 뒤흔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결제 시장 판도 바꾼 트래블 월렛, '넥스트 스텝'으로 스테이블코인 지목
지난 2017년 설립된 트래블월렛은 신용카드가 지배하던 해외 결제 시장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기업으로 꼽힌다. 그간 해외 여행객은 높은 결제·환전 수수료를 지불하면서도 기존 신용카드 결제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트래블월렛은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 '원화 기반 월렛 결제'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 내 월렛에 원화를 충전만 하면 현지 통화로 바로 결제·송금할 수 있도록 설계해 환전 과정과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해당 서비스는 해외 여행객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해 46개국 통화 지원, 누적 거래액 4조 6000억 원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신용카드 중심의 해외 결제 시장에서 수수료·환전 구조를 혁신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이제 트래블월렛은 '넥스트 혁신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핀테크 기업들이 내세운 결제·지급 목적의 용도를 넘어 '코딩할 수 있는 돈'을 통해 금융 산업 전반을 IT 영억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트래블월렛은 지난달 블록체인 플랫폼 아발란체와 손잡고 스테이블코인에 코딩 기술을 접목한 '프로그래머블 스테이블코인' 개발 협업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에 '스마트 콘트랙트' 기술을 적용해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무역 대금 지급, 할부·에스크로 거래 등이 자동 실행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는 "보험이나 무역·기업 금융은 복잡한 시스템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프로그래머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특정 조건에 따라 (자금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 백·미들오피스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금융사는 단순 금융 서비스를 넘어 IT 기반의 자동화 솔루션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급결제 시스템 100% 자체 구축…"금융·IT 구조 이해도 최고"
트래블월렛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든 수많은 핀테크 기업 사이에서 갖는 강점은 금융·결제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이해도'다.
스테이블코인을 잘 활용하려면 금융·결제 인프라 구축과 유관 기관과의 협업이 중요하다. 트래블월렛은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제로베이스에서 이해하고 개선할 역량을 확보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김 대표는 "지급 결제에 필요한 핵심 시스템은 크고 복잡해서 다른 기업에서 빌려 쓰는 경우가 많은데, 트래블월렛은 자체적으로 지급결제 IT 인프라를 클라우드에 100% 구축한 전 세계 유일한 회사"라고 강조했다.
현재 트래블월렛의 주력 사업 모델이 디지털 월렛을 클라우드에 구축해 대형 기관에 공급하는 기업 간 거래(B2B)인 배경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이를테면 자동차를 운전만 할 수 있는 사람과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해 본 사람은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제로 베이스'부터 금융에 필요한 IT 시스템 인프라를 만들어 봤기에 사람이 하던 일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자동 구현해 더 좋은 효율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46개국 결제망 네트워크로 스테이블코인 대중화 노려
46개국의 현지 통화를 지원하는 등 해외 결제 환전·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쌓은 네트워크도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현재 세계적으로 트래블월렛과 같은 '디지털 월렛'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면서 트래블월렛이 스테이블코인 대중화에 유리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김 대표는 "(트래블월렛의) 익숙한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높은 비용과 낮은 유연성을 대체할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대중화의 핵심으로 디지털 월렛을 지목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선 디지털월렛 확산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중국은 알리·위챗페이가 생활 전반에 뿌리내렸고 일본은 '페이페이'를 중심으로 현금 중심의 결제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형 기관들과 공동으로 IT를 개발한 경험을 토대로 네트워크 쪽에서도 (다른 핀테크 기업보다) 분명한 강점이 있다"며 "전통 IT 시스템과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구조를 짜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관들과 공동으로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효율적인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제 넘어 '수출 가능한 IT 산업' 구상…금융 시장 재편 '빅 픽처'
트래블월렛의 '빅 피처'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간소화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금융 경쟁 구도를 재편하는 것이다. '신 시장'이 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트래블월렛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면 사업 확장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과거 한국 금융사가 JP모건이나 씨티은행 등 글로벌 금융사와 경쟁하는 것은 말도 안 됐다"며 "금융 서비스가 프로그래밍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면 IT 서비스 역량까지 갖추게 돼, 한국 기업이 글로벌 대형 은행과 경쟁할 기반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무역금융 등에서 일반 기업이 수행하던 업무를 한국 금융사가 자동화 솔루션 형태로 제공하면 글로벌 기업·무역금융 시장에서도 한국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주장이다. 김 대표가 프로그래머블 스테이블코인을 '수출 가능한 IT 산업'으로 정의한 이유다.
프로그래밍 스테이블코인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디지털 월렛의 수요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중개 은행·정산 과정을 줄여 낮은 수수료와 높은 편의성을 제공하고 자체 지급·결제 시스템을 통해 안정적인 인프라 운영이 가능한 만큼, 이미 46개국 결제망을 갖춘 트래블월렛은 시장 변화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란 평가다.
chsn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