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챗GPT)
◇ “전세 에스크로, 임대인은 이득이 없어”
9일 정부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이례적으로 긴급 공고 형태로 ‘주택임대차 보증금 보호 방안 마련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용역기관으로 선정한 상태다. 연구 용역 기간은 3개월로 늦어도 오는 11월까지 나온 연구결과를 토대로 연내에는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전 문재인 정부 때도 검토된 바 있는 ‘전세 에스크로 제도’ 도입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전세 에스크로는 전세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신탁사나 보증기관 등 제3의 기관에 예치하는 제도다. 국토연구원은 이 제도와 관련해 보고서를 통해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차 보증금의 10%가량을 의무적으로 신탁사나 보증기관 등에 예치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전세 에스크로를 이용하면 집을 살 때 집주인의 자기자금 투입비 부담이 커져 무한대의 무자본 갭투자도 막고, 이를 통해 전세사기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세 에스크로는 임차인 보호를 위한 취지는 좋지만, 보증금으로 수익을 내던 임대인 입장에선 효용성이 떨어져 결국 전세의 월세화만 부추기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도를 강제하지 않는 이상 전세 공급자인 임대인이 선택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에스크로 제도는 임차인 보호 효과가 있겠지만, 보증금을 운용해 투자나 대출 상환에 활용해온 임대인 입장에서는 유동성 제약이 커져 전세 공급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수수료가 높으면 참여 유인이 더욱 떨어지고, 낮춰도 임대인 자금 흐름의 경직성이 커져 제도 확산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임대인들 입장에선 이득이 없으니 월세로 돌리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며 “차라리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임차인을 대리하는 중개사, 임대인을 대리하는 중개사의 각자의 중개사가 공동 중개하는 방식을 취해 전문가에 의해서 전세사기를 사전 차단하는 방식이 가장 나은 형태로 보인다”고 전했다.
◇ 선순위 대출 있는 빌라는 ‘월세’만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임대인이 전세를 공급할 유인을 남겨두면서도,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송 대표는 “에스크로 의무화와 같은 극단적인 제도 보단 보증보험 의무화, 임대인 신용도 공개, 보증금 분할 예치 등 제도를 다층적으로 설계하고, 공공기관 개입을 통한 수수료 경감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전세사기의 주된 원인이 시세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빌라와 다가구에서 나오는 만큼 ‘비아파트 주택의 가격 투명화’를 위한 노력이 동반되면 좋을 것”이라며 “예를 들면 빌라의 감정가를 감정사가 평가토록 하고 이 금액에서 선순위 권리가 있는 빌라는 전세 대신 월세만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반면 선순위 권리가 없는 빌라는 감정가 금액 50% 정도만 전세를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 밖에도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포함된 ‘전세사기 보증보험’ 제도 도입 여부도 주목된다. 이미 전세 보증보험은 있는 상품이지만 이 대통령이 공약에 대건 전세사기 보증보험은 ‘누구나 가입 가능한’ 것이 기존과 가장 큰 차이다. 이 대통령은 또 보증 가입 주체를 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방안이 도입되면 보증 가입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만큼 보다 많은 세입자가 보장받는 대신, 보증 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기존에는 가입 문턱이 있어 전세사고가 100만큼 나면 100을 돌려받았지만 이젠 100 만큼 사고가 나면 80은 돌려받고 20은 개인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갈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