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제’ 시간의 벽을 허무는 사회[0과 1로 보는 부동산 세상]

재테크

이데일리,

2025년 10월 05일, 오전 09:32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2004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 주말의 절반은 일터였다. 금요일 밤을 지새우고, 토요일 새벽 기사 마감과 교열을 마친 뒤에야 점심 해장국 한 그릇으로 토요일 업무를 마무리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사이 주 5일제가 안착했고, 우려했던 ‘토요일 관공사, 병원·은행 공백’은 제도 조정과 기술 확산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사진=게티이미지)
2025년 10월,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시간의 재구성 앞에 서 있다.

정부가 ‘주 4.5일 근무제’를 포함한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의 연내 제출을 공식화했다. 하위법령 66건 연내 정비와 110건 법률안의 신속 제출까지 제시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정기국회 처리를 염두에 둔 구체적 로드맵이다.

나는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알스퀘어의 일원으로서 이 변화를 ‘오피스 시장의 구조와 가치’라는 렌즈로 들여다 본다. 제도 변환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작동하는 설계와 문화, 기술, 공간의 정교한 맞물림이 있어야 한다.

◇주 6일에서 주 4.5일, 그리고 우리 아이 세대의 ‘주 3일’까지

6~7년전이다. 스타트업 ‘여기어때’ 재직 시절, 금요일 오후 1시 조기퇴근을 시도했지만 잔업과 눈치 문화 탓에 체감효과는 미미했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를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으로 바꾸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은 눈치를 지웠고, 제도는 비로소 일상이 됐다. 바뀐 캘린더만큼이나 바뀐 문화와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두 번째 교훈이었다.

주 4.5일제가 불러올 오피스의 재정의는 시작됐다. 엔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대되며 좌석공유, 거점오피스, 사물함 중심 운영은 많은 기업의 기본 선택지가 됐다. 근무일이 줄면 남은 근무일의 ‘밀도’가 오른다. 회의실과 프로젝트룸, 집중좌석의 비중 재조정이 불가피하고, 회의 운영과 원격 협업의 스케줄링 표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요구된다.

결과는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총임차면적을 줄이며 면적당 품질과 협업비중을 높이는 기업과, 인재경쟁과 브랜드를 위해 고급화된 복지·웰빙 공간에 투자하는 기업. 오피스 수요는 양보다 질, 밀도·가변성·경험?로 이동하고, 입지는 ‘출근일 집중 동선’과 ‘거점 네트워크’의 균형 위에서 재평가될 것이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필연

OECD는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이 빠른 속도로 감소해왔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을 상회한다고 진단한다(2022년 1,901시간, OECD 평균 1,752시간). 생산성은 OECD 평균 대비 낮은 편이다. 제도 변화가 시간 절감과 생산성 제고라는 이중 과제임을 시사한다.

2022년 영국 61개 기업 2,900명 대상 세계 최대 4일제 파일럿은 매출 안정에서 증가(평균 1.4% 상승), 이직과 병가 감소, 복지 개선을 보고했다. 다수 기업이 정책을 영구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의 4일제 실험은 생산성 약 40% 향상을 기록했는데, 핵심은 회의와 이메일의 효율화 등 업무방식 재설계였다.

한국은 원격근무 시간 비중이 주요 40개국 중 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시간 대면문화와 산업구조, 평가체계가 복합된 결과다. 주 4.5일 논의는 ‘근로시간’만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가’를 동시 재설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오피스와 도시의 연쇄 변화

자산운영과 개발 차원에서, 코어급 오피스는 가변형 평면, 모듈형 회의실, 음향과 네트워크 인프라를 표준사양으로 내재화할 것이다. 리피트테넌시 유도는 ‘입지’에서 ‘운영경험’으로 축이 이동한다.

임대차 시장에서는 고정면적·장기계약 일변도에서 플랙스 옵션과 공용부 협업 인프라의 서비스 레벨이 실질 임대료에 반영될 것이다. 도시경제 차원에서는 출근일 집중과 분산 패턴 변화가 상권 시간대 수요와 교통 피크를 재편한다. 공공은 교통과 보육, 의료 시간정책을 ‘짧은 주’에 맞춰 재디자인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에게 종종 말한다.

“네가 사회에 나갈 즈음이면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아 질 것이다.”

과감한 예언 같지만, 역사적 추세와 기술혁신은 가능성을 지지한다. AI와 자동화는 반복적이고 저부가가치 과업을 덜어내고, 인간의 일은 한층 창의적이고 전략적으로 변환된다. 그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몇 시간을 채웠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성취했는가’다.

주 4.5일제는 ‘쉼의 확대’가 아니라 ‘일의 재설계’다. 정부는 입법과 더불어 성과평가, 노무규정, 세제, 인력전환 지원을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기업은 회의와 보고, 도구와 공간을 다시 짜야 한다. 부동산 산업은 가변성과 밀도, 경험 중심의 오피스로 표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는 시간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주 6일에서 5일로 넘어왔듯, 4.5일에서 4일, 멀게는 주 3일까지, 그 길은 결코 신화가 아니다. 제도와 문화, 기술과 공간이 정합성 있게 맞물릴 때, 시간의 벽은 낮아지고 삶의 품격은 높아진다. 그것이 오늘, R2 대외협력실장인 내가 한국 오피스 최전선에서 목격하고 있는 변화의 실루엣이다.

토요일 해장국으로 시작했던 주말이 이제는 금요일 저녁 가족과의 시간으로 바뀌었듯,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더 인간다운 시간의 리듬을 찾아갈 것이다. 그 여정에서 오피스는 단순한 일터를 넘어 창조와 협업의 무대로, 도시는 24시간 돌아가는 기계를 넘어 삶의 품격을 담는 그릇으로 진화할 것이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사진=알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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