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챗GPT)
◇경기 불확실성과 비용 절감의 명령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얼마전 발간한 ‘2025 오피스 임차시장 트랜드 리포트’는 이러한 변화를 수치로 확인해준다.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부터 경기 동행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기업의 재정 부담이 뚜렷해졌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들의 이전 수요는 서울 기타 지역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기업들은 임대차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간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큰 빌딩에 입주해야 기업이 성장한다’는 믿음이 강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합리적”인가가 기준이 되고 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의 차원을 넘어, 불확실한 경기 환경 속에서 기업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공실률, 안정과 불안 사이
서울 핵심 권역의 공실률은 여전히 5% 미만이다. 강남권(GBD) 대형 오피스는 1%대, 여의도(YBD)는 2.68%를 기록하며 안정적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2027년 이후 대규모 공급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은 향후 시장이 공실률 상승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는 신호다.
즉, 현상은 안정적이지만 구조적 흐름은 불안정하다. 수면 위는 잔잔해 보이나 수면 아래서는 물길이 바뀌고 있는 강의 모습과 같다.
◇임차인의 점진적 이동: 중심에서 주변으로
2025년 상반기, 임차인이 서울 기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비중은 분명 늘었다. 반대로 전통의 3대 권역인 CBD(종로·광화문), GBD(강남), YBD(여의도)로 들어오는 비중은 줄었다.
업종별 차이를 보면 더욱 흥미롭다. 제조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서울 기타 지역 이전 비중이 확대됐다. 반면 CBD와 YBD 권역으로의 이전은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에서 감소했다. 3대 권역 중 유일하게 GBD만이 이전 비중 확대를 보이며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는 강남이 여전히 금융, 정보통신, 전문 서비스업의 ‘안전지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전 패턴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는 ‘감평 이전’이다. 과거에는 더 넓은 공간으로 옮기는 증평 이전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기존보다 작은 면적으로 줄여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형·중형 빌딩보다 소형 빌딩으로 이동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신호다. 과거 업계가 즐겨 쓴 표현인 ‘Flight to Quality(질 높은 건물로의 이전)’ 흐름은 약화되고 있다. 대신 기업들은 ‘큰 빌딩의 상징성’보다는 효율적 공간 활용과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다.
◇권역별 선호도의 재편
2024년을 2023년과 비교했을 때, 서울 기타 지역으로의 이전 선호가 꾸준히 증가했다. 서울 3대 권역의 선호도는 모두 줄어들었지만, GBD만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업종별로는 금융·보험,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 건설 업종이 GBD를, 숙박·음식점과 운수·창고 업종이 CBD를 여전히 선호한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수도권·지방으로의 이동 선호가 줄어든 가운데, 서울 기타 지역으로의 분산 흐름이 뚜렷해졌다.
리서치센터는 이번 리포트에서 “서울 오피스 시장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임차인의 선택이 점진적으로 변화 중”이라고 분석한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의 오피스 시장은 중심과 상징을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효율과 비용 절감이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다. 임대인들 역시 단순히 위치와 건물 크기로 경쟁할 수 없게 됐다. 할인 조건, 내부 구조 조정, 지역 특화 전략 등 세밀한 대응이 필수로 요구된다.
오피스 시장은 ‘큰 나무에 모여드는 시대’에서 ‘작은 숲을 이루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변화는 급격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하고 점진적이다. 이는 임차인들의 생존 전략이자, 시장의 구조적 진화다.
앞으로 다가올 대규모 공급, 경기 불확실성, 비용 압박은 임차인의 선택을 더욱 세분화할 것이다. 서울은 하나의 큰 숲이 아니라, 다양한 숲이 공존하는 다핵적 도시 생태계로 재편될 것이다. 20년 넘게 이 시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번 변화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닌 구조적 전환의 시작으로 보인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이제 ‘중심’이 아닌 ‘다양성’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사진=알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