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th SRE][Cover]석화 대공급의 시대…줄이지 않으면 무너진다

재테크

이데일리,

2025년 11월 18일, 오전 11:02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공급과잉으로 촉발된 석유화학 업황 둔화가 채권시장을 흔들고 있다. 주요 기업의 현금창출력이 약화됐고 등급 하향 조정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석화 관련 채권에 한층 보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단기적 충격보다는 중장기적 재편 효과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신용 불안은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석화발(發) 구조조정이 크레딧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석화 업황 둔화가 신용시장 불확실성 키워

36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에서 총 22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석유화학 업종의 공급과잉 및 업황 둔화가 국내 크레딧 시장에 미치는 영향’ 질문에 대한 점수는 평균 2.18점(5점 척도)으로 집계됐다. 1점에 가까울수록 부정적인 인식을 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문가들은 석화 업황 둔화가 채권시장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크레딧애널리스트(CA) 72명의 평균은 2.04점, 비(非) 크레딧애널리스트(비CA) 150명의 평균은 2.24점으로, 비CA보다는 CA가 석화 업황 둔화가 채권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봤다.

이처럼 채권시장에서 석유화학 업황 둔화를 단순한 산업 경기 둔화가 아닌 ‘시장 리스크’로 인식하는 이유는 이 업종의 높은 채권발행 비중 때문이다. 석화기업들은 설비 투자와 운영자금 상당 부분을 회사채를 포함한 시장성 차입금을 통해 충당해 왔다. 석화 업황 악화가 신용등급 하락 압력과 스프레드 확대 등 채권시장 전반의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의 사업재편 협약 참여 기업의 금융권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은 32조원에 달한다. 이 중 회사채를 포함한 시장성 차입금은 14조원으로 43.8%를 차지한다. 이외 은행권 대출은 16조원, 외화 증권은 2조원이다. 정부는 석유화학기업들이 상환해야 하는 시장성 차입금에 대해 자체 해결을 원칙으로 제시한 상태다.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시장성 차입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롯데케미칼 1조3800억원 △한화솔루션 1조8250억원 △한화토탈에너지스 6500억원 △여천NCC 3350억원이다. 올해 공모 회사채를 발행한 업체로는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한화토탈에너지스, SK케미칼, 한솔케미칼, LG화학, SK지오센트릭 등이 있다.

◇석화채 투심 위축 현실화…미매각 ‘수두룩’

이미 투자자들의 석화채 투심 위축은 현실화하고 있다. 효성화학(BBB)과 같은 비우량채는 물론 LG화학(AA+), 롯데케미칼(AA-) 등 우량등급 기업조차 적자 누적과 신용등급 하향 압력에 직면해 있다. 최근 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여천NCC는 2022년 이후 세 차례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기록했다.

채권자들의 조기상환청구권 발동 가능성도 부담 요인이다. 주요 기업들이 핵심 설비나 비주력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용구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각 조건이 변동되거나 계약 이행이 지연될 경우, 단기 유동성 악화와 함께 채무 상환 압력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적 부도 이전 단계에서 채권단 관리나 만기 연장에 의존하는 이른바 ‘광의의 부도’ 상황에 진입할 경우 신용등급이 대폭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용 리스크가 부각되면 투자심리가 위축돼 유동성 경색이 심화하고 동종 업계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광의의 부도를 사실상의 채무불이행으로 간주해 투기등급(BB+ 이하)까지 등급을 낮추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응답자는 “석유화학 업종은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업황 둔화가 크레딧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며 “공급과잉 조정 과정에서 외형 축소와 영업손실 반영이 불가피한 만큼 재무건전성 저하 가능성도 높다”고 답했다.

이어 “석유화학사들은 채권시장의 대표적 ‘빅 이슈어’로 해당 업종의 회사채 발행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등급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이 때문에 신용등급 하락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 전체가 받는 충격이 크고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SRE 자문위원도 “최근의 크레딧 리스크 확산세는 일단 바닥을 통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업황 회복이 지연될 경우 다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업체와 정유업체의 공모채 발행량은 총 5조706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발행된 전체 일반회사채 49조8911억원의 11.4%에 해당한다. 일반회사채는 금융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를 제외한 일반기업이 발행한 공모채를 의미한다.

◇“구조조정 불가피한 업종…속도 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석화업계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업황 부진이 신용시장 전반의 리스크 요인으로 확산되면서 구조적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업계와 협의 끝에 연말까지 연 1470만t(톤) 규모인 국내 10개사 나프타분해시설(NCC) 중 17~25%(270만~370만t) 감축을 목표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실제 36회 SRE에서 ‘석유화학 업종의 상황을 고려할 때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평균 점수는 4.48점(5점 척도)으로 집계됐다. 점수가 5점에 가까울수록 구조조정 필요성이 높다고 본다는 의미다. 응답자 집단별로는 CA가 4.72점으로 가장 높았고, 비CA가 4.36점을 기록했다.

이어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중장기적으로 크레딧 시장에 미칠 효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라는 질문은 평균 3.37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조조정이 장기적으로 신용시장 안정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함을 보여준다. 세부적으로는 CA가 3.42점, 비CA가 3.35점이었다.

다만 일부 응답자들은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중장기 효과에는 공감했지만 실제로 구조조정이 추진될 가능성에는 의문을 나타냈다. 한 응답자는 “석유화학업종은 중국의 과잉 공급과 중동의 정유·화학 수직계열화, 그리고 환경 규제 강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업부의 대응이 원론적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업계 차원에서도 생산 축소나 구조조정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응답자도 “석유화학은 대규모이자 장기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업종”이라면서도 “과잉 설비 조정과 부실 정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한계기업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의 대규모 증설 여파로 수익성 둔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에틸렌을 중심으로 아시아 역내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업황 전반에 부담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최근 5년간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약 2500만t 늘었다. 여기에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차 증설이 본격화되면 에틸렌은 3000만t, 프로필렌은 2200만t이 추가로 공급될 전망이다. 사실상 ‘공급 폭탄’ 수준으로, 가동률 하락과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6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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