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 루나미엘레 그랜드볼룸에서 성장지향형 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혁신 전략을 주제로 열린 제2차 기업성장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1.2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43년 만에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불붙으면서,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을 분리한 '금가분리' 원칙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7년 금융당국의 행정지도 이후 8년째 금융사의 시장 참여가 사실상 차단됐지만, 해외는 금융·가상자산 결합이 빨라지고 있어 제도 개선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 공약인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서라도 금가분리 원칙을 유연하게 재해석해 금융·가상자산 간 합종연횡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8년째 멈춘 금융사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금가분리 원칙' 재조명
21일 업계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하면 금산분리의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계 부처와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요구하면서 43년간 유지된 금산분리 규제 완화 논의가 수면 위에 오른 것이다.
구 부총리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규제를 무조건 유지하는 것이 선(善)은 아니다"라며 "다만 당장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것은 아니고 한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을 분리한 '금가분리' 원칙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금가분리는 금산분리 원칙을 가상자산 산업에 확장 적용한 개념이다.
정부는 지난 2017년 '가상자산 긴급대책'을 통해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매입·지분투자 등을 금지한 바 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였지만, 금융사들의 가상자산 산업 진출은 사실상 8년째 봉쇄됐다. 은행이 가상자산 거래소 실명계좌를 제공하거나, 커스터디(가상자산 수탁) 사업에 소규모 지분투자로 참여할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이 때문에 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도 의사결정 속도·투자 규모·신사업 혁신 모든 면에서 뒤처져 왔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한 블록체인 기업 대표는 "자산·리스크 관리 역량이 높은 금융사가 시장에 들어와 직접 투자를 하거나 협업해야 산업의 신뢰도가 높아지는데, 금가분리 원칙은 산업 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금융사가 배제되면 시장은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굳어지며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시세 조작 위험도 더 잦아진다"며 "결국 피해는 정보력·자금력이 약한 시장 참여자에게 돌아간다"고 전했다.
해외는 금융·가상자산 결합 가속…ETF·토큰화로 시장 저변 확대
반면 해외의 경우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의 결합이 활발하다. BNY멜론·골드만삭스·JP모건 등 대형 은행들은 코인베이스·서클 등 가상자산 기업들과 제휴하며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 이후 은행의 가상자산 보유·매매를 공식적으로 허용했고,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최근 은행이 블록체인 수수료 지불을 위해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들도 현물 ETF와 자산 토큰화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이는 중이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미국 앵커리지디지털은 OCC에서 은행 인가를 받아 커스터디·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에서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 30억 달러의 유니콘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블랙록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이 들어와야 가상자산 가격 추락 시 변동성이 완화되고 시장도 성숙한다"며 "미국의 토큰화·지급결제 혁신이 가능한 이유도 이 같은 금융 인프라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금가분리 원칙 재해석 필요…금융·가상자산 '합종연횡' 이뤄내야"
이에 따라 업계에선 금가분리 원칙을 유연하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시장 규모가 이미 커진 만큼, 진지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기업이 투자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적극적인 투자·인수·자회사 설립 등이 가능해지면 금융과 가상자산의 합종연횡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빗 리서치 센터는 "전통 금융의 투자와 파트너십은 가상자산 시장 성장의 핵심 촉매"라며 "커스터디 인가 제도 정비, 금융사 자회사 설립 허용, 전략적 투자 규제 완화, 금융·핀테크 협력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현행 금가분리 체계에서는 추진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센터는 "ETF 도입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외에도 외국인 투자 허용, 파생상품 제도화 등도 모두 현재 규제 환경에선 쉽지 않다"며 "금융당국의 역할 재정립과 한국은행과의 기능 조율을 통해 금가분리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chsn12@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