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경(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전세 대출 옥죄기 등으로 서울 강남권과 외곽을 중심으로 전세 시장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던 전세가 각종 규제로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만 진입할 수 있도록 재편되면서 오히려 서민들은 월세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17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서울 외곽의 전세 매물이 감소하고 있다. 성북구의 전세 매물은 7월 591건에서 이달 15일 254건으로 반토막 난 가운데, 중랑구도 7월 420여건에서 190건 밑으로 떨어졌다. 반면 강남권 아파트 전세 시장 분위기는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송파구는 같은 기간 1250건에서 3639건으로 전세 매물이 3배 가까이 늘었다. 강남구도 아파트 전세 매물이 5000건 안팎에서 6000건을 넘어섰다.
강남은 전세 공급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수요가 더 빠르게 몰리며 전셋값이 올랐다. 이데일리가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서울 자치구별 국민평형 아파트 평균 전셋값 추이를 요청해 분석한 결과 송파구의 경우 올해 1월 7억 1842만원이던 평균 전셋값이 지난달 9억 7575만원까지 올라 10억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무려 35.8%나 급등했다. 아크로리버파크 등 강남 대장단지들의 경우 수요 쏠림으로 인해 자고 나면 수 천 만원에서 억대로 오른다.
반면 성북구의 경우 같은 기간 5억 3022만원에서 5억 8479만원으로 쪼그라든 공급량에 비해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전세 매물도 없지만 전세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전세 보증금을 감당할 만한 수요가 더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강남과 비강남권 임대차 시장의 뚜렷한 온도 차이는 전세 세입자의 자금력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6·27 대책으로 수도권의 전세대출 보증비율이 90%에서 80%로 낮아지면서, 금융회사가 부담해야 할 위험이 커지자 전세대출 심사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소득과 신용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대출이 막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세입자들의 전세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10·15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규제지역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서 서울 전역으로 확대된 데다 전세대출 이자 상환액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되면서 전세 대출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서울 전역에서 전세대출을 활용해 보증금을 마련해온 세입자들의 대출 여력이 급격히 줄었고, 결국 자기자본이 부족한 수요층을 중심으로 월세 전환이 가속화 하고 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전세 대출 규제가 강화하는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전세 대출 의존도가 높았던 서울 외곽에서는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똘똘한 한 채’ 현상으로 서울 외곽 주택부터 매도에 나서는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외곽은 전세 매물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하는 상황에서 서울 외곽 매도를 하고 강남권 등 중심부는 보유하자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며 “결국 서울 외곽은 매도가 늘며 실거주자만 남고 임대주택도 덩달아 줄어 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남에서 전세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강남권 집값의 추가 상승 기대감이 꼽힌다. 이 연구위원은 “강남에선 ‘지금 파는 것보다 보유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세입자가 자주 바뀌는 월세보단 장기간 계약이 가능한 전세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 외곽에서 전세 공급이 줄고 있는 이유는 집값 상승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낮아 당장의 현금 흐름 확보를 위해 월세 전환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주거 사다리는 필요…전세 없애기보단 보완
문제는 전세라는 주거 사다리 혜택이 자금력이 있는 계층에 집중되면서 양극화 현상 심화 등 자산 격차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는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이 생애 최초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며 “중산층의 자산 축적 경로에서 전세 거주 후 아파트 매입 경로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서울 외곽부터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무주택 서민이나 청년층의 자산 형성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전세는 임대인 입장에서도 공실 리스크가 적고, 매매시장 가격 안정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전세 자금줄을 빠르게 조여가며 전세를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만들기보다는 전세 사기·깡통전세 등 구조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보증 강화, 투명한 정보 공개 등 제도적 보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고 교수는 “갭투자 금지로 전세 공급 자체를 줄이는 것이나 전세 대출을 강화하는 것은 결국 임대차 시장 혼란만 가중하는 부작용만 낳는다”며 “전세를 없애는 방향보단 순기능을 감안해 보증 강화를 중심으로 제도권 내 안전장치를 정비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제언했다.









